우화

from text 2011/01/29 11:57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토끼가 달렸어. 자기 굴 다섯 번째 입구를 머리 속에 떠올리고 말이야. 마음에는 다섯 개의 별을 그렸지. 세상의 비밀을 이제 슬쩍 엿보았을 뿐인데, 간밤에도 몇 차례 달이 지고 너구리 굴에 잠자던 낙엽은 하늘로 올랐지. 때가 된 건가, 눈밭을 헤치던 토끼는 아가위 붉은 열매도 지나치고 추상같은 전령도 지나쳤어. 까무룩 잠이 들었나, 술이 달더라니, 환약 같은 기억들을 검게 내지르고 토끼는 그예 길게 눕고 말았대.

새로 튼 둥지에서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도 철이고 멀어도 갈 길은 가야 하는 것을, 남은 생과 지나온 자국이 칼바람에 살갗을 에는 양 마냥 시리다. 세상엔 머지않아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필 테지. 사이나 먹은 붉은 열매 같은 것이 목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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