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각산

from text 2006/10/22 12:54
홍어를 처음 먹을 때 그랬다. 이 놈의 걸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근데 이상하게 며칠 지나고 나니 그 곰곰한 맛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었다. 다시 먹을 때도 아 참 이거 못 먹겠다 했는데, 또 며칠 지나자 그 씹히는 맛이 생각나곤 했다. 서너번 반복하고 나자 이제 그 맛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 간혹 먹곤 한다.

어제 영덕에 있는 팔각산을 오르내리면서 그 생각을 했다. 홍어랑 등산이랑 내겐 진배없는 것 같다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는 딱 포기하고 내려갈까 하는 고비가 꼭 몇 차례 있으면서 이 놈의 것이 나에게 안 맞는 것 아닌가 회의가 들곤 하는 것이다.

일봉부터 이봉, 삼봉, 해서 팔봉까지 오르내리는 길이 험하였다. 곳곳에 암벽이라 밧줄을 타는 길이 많았다. 마른 가을 단풍이라 그리 곱지는 않았지만, 가을볕과 바람이 좋았다. 낚시터횟집에서 한 잔.

팔각산 입구 화장실에 영덕 무슨 로타리클럽에서 붙여 놓은 명언이 와닿아 메모해 왔다. 속에 옥을 지닌 사람은 허술한 옷을 입는다. 출처를 찾아보니 노자 도덕경 중 피갈회옥(被褐懷玉, 거친 옷을 입고 품에 옥을 지니다, 세인들이 그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에서 나온 듯 한데, 숨은 뜻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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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긴 댓글

    Tracked from hidigi.com 2006/10/23 15:28  delete

    홍어 적응.. 삼합이라고.. 그.. 인동주랑 같이 주는.. 목포의 인동주 마을이란 곳이 생각납니다. 김해 있을 때 출장 무진장 다녀왔더랬는데.. 그곳이 뭐.. 그냬들 말로는 김대중 대통령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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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gi 2006/10/25 14: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홍어 적응.. 삼합이라고.. 그.. 인동주랑 같이 주는.. 목포의 인동주 마을이란 곳이 생각납니다. 김해 있을 때 출장 무진장 다녀왔더랬는데.. 그곳이 뭐.. 그냬들 말로는 김대중 대통령님 진상(?)을 올렸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더군요. 가격도 크게 쎄지도 않고, 간장 게장이 실상은 우리 입맛에 더 맞았지만 서너 차례 적응을 해 보았지만.. 그게.. 그 때마다 힘겨웠는데.. 여럿이서 함께 먹을 때는 나름 괜찮으나, 술 한 잔 안하고 밥으로 먹을 때는 힘들더군요. 하지만 또 그 싸한 맛이 그리워지는 것이.. 아무튼 어려운 음식입니다.

    거기서 10분 남짓 떨어진 곳에 낙지마을 - 지명은 아니고 - 이란 부락이 있는데 거기는 또 낙지가 유명하더이다. 제일 유명한 집을 소 뒷걸음질로 찾았으나 낙갈탕을 먹어야 하는건데.. 낙지탕이 제대로 된걸로 알고 먹었더니.. 낙지 세 마린가 헤엄쳤던 헹군 물에 기름 동동.. 암튼 맛집을 찾아도 메뉴에서 헤매면 망하겠더군요.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는데 광주에서 왔다며 떠들어 대던 두 커플이 제 옆 자리에서 먹는 걸 구경했는데.. 흉내도 못 내겠더군요. 나무 젓갈에 낙지 한 마리 꿰서 먹는데.. 10 분 상간에 그들이 대충 삼킨 낙지가 십 여 만원 어치는 되겠더군요. (댓글이 길어진다.)

    귀한 맛집 두 곳을 출장 갔던 업체 관리와 직원에게 각각 들었는데.. 참.. 그게.. 욕만 먹고 돌아와도 시원찮을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도 정감있던 사람 대하는 태도에 감동까지 먹고 왔지요. 워낙에 외진 곳이라 그런지. AS 하러 걔까지 간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들. 차근 차근 느긋하게 요구하고 기다리며 도와주고 밥은 먹었는지 -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게 해주었고, 그 밥은 경상도 여느 식당과는 비교도 안될 맛을 가진 찬들이었다 - 자고 갈건지, 잘거면 어디에 묵을건지 물어봐주고 관심 가져주었고, 심지어는 목포에 처음 와 본다는 저를 데리고 부속 사러 가는 김에 드라이브 까지 시켜주었어요. 그 관리라는 양반은 일산 사는 서울 사람이었는데.. 목포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 주셨고, 직원 분은 저 보다 훨씬 어린 연배 였지만 몇 차례 대면하면서 사적인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지요.

    힘들고 짜증나는 목포 출장길이 개인적으로는 그립기만한 그런 시간이었네요. 아아.. 가을 타는갑다. 쀍~!!

    • excuser 2006/10/23 17:44  address  modify / delete

      아직 밥하고 먹는다는 건 상상도 않는다. 해도 쏘주 한 잔이랑 곁들이는 날이면 거 참 그 맛이, 하매 입에 이리 침이 고여서리 원, 언제 함 같이 땡기도록 하자꾸나, 대구에도 잘 하는 집이 몇 군데 있으니.. ^^

      친절이란 작은 듯 해도 참 귀한 성품의 하나인데, 갈수록 귀해지니, 더욱 귀한가 한다, 쓰고 보니, 파이란이 불현듯 떠오른다. 친절한 강재씨..

  2. digi 2006/10/25 14: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강재씨는 친절하기만 했는데 역도산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신 송해성 감독님의 스타시스템 부적응은 한차례 찔끔 눈물 훔치고 났더니 남는 여운이 없더이다. 가을이면 생각나서 또 틀어 보는 DVD들.. 러브레터, 8월의 크리스마스, 파이란, 봄날은 간다 가 티비 다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허진호 감독님도 그 두 편이 다죠, 아마? 욘사마와 예진 아씨 나오던 제목도 기억 안 나는 그 영화는 보다 졸아서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가을 입니다. 논술 쌤이 권해주신 그리운 메이 아줌마를 챕터 2에서 울먹이다 면박 당하고 3으로 겨우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요즘 복동이에게 책 읽어 주는 디기였습니다. (동화 구연 잘해요, 저..^^;;;;;)

    • excuser 2006/10/25 16:49  address  modify / delete

      서연이에게 권정생 동화집(이라기엔 그림은 별로 없고 글만 잔뜩인데) 중 하느님의 눈물 읽어주다 울 뻔한(운) 기억이 나는군.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감흥이 참 다르다는 걸 자주 느낀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불러주다가는 이절에서 그만 왈칵 하기도 했더랬지.

  3. digi 2006/10/25 17: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산토끼 2절 검색해서 불러줘야겠습니다.^^;;; 가을입니다..

  4. digi 2006/10/25 23:4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고개 고개를 나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 올테야.



    대관절.. 어느 대목에서..? 라는 생각만 드는 밤입니다.

    • excuser 2006/10/26 00:05  address  modify / delete

      산토끼 이절을 검색해서야 알다니.. ^^

      사안~ 고~ 개 고 개 를 나~ 혼 자 넘어서
      토~ 실 토~ 실 알 밤 을 주~ 워어 올 테 야

      천천히, 좀 동요스럽지 않게, 약간은 가곡에 가깝게, 단조 음계를 띠며, 반복해서, 조금만 큰 소리로 불러보렴. 찬 바람 부는 어느 늦은 가을날, 산 고개 고개를 혼자 넘어서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토실토실이라는 반어적 부사까지 붙은, 그래서 이 대목을 강조하여 톤을 좀 높여 부르면 더욱 효과적인데)알밤을 줍는 한 마리 작은 토끼를 생각하면서.

      뭐 아님 말고. ^^

  5. 머리에꽃을 2006/10/30 03:0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지하철참사대책위 활동 하던 때 였습니다. 상황실 티브이에서는 흑산도 홍어특집 방송이 나오고 있었지요. 근데 마침 광주에서 온 Y간사가 그걸 보고는 자기 고향이 저기라며 경상도 음식에 대한 불평과 함께 홍어자랑을 줄기차게 해대었지요. 약이 오른 우리는 돈을 모아서 그 양반에게 오리지널 홍어를 대량으로 붙이라 압력을 넣었습니다. 일주일 후 우리는 엄청난 양의 홍어를 받았습니다. 일부는 양념이 되었지만 대부분은 엄청 삭힌 상태였지요. 급한 마음에 굵은 소금에 찍어 입에 넣자마자 뻥 뚫리던 콧구멍. 그 자극적인 맛은 아직도 콧속에 생생합니다. 코로 맛을 본 홍어. 중독성이 있더군요.^^

    • excuser 2006/10/30 09:04  address  modify / delete

      머꼬도 같이 가야겠는걸. 디기 대구 온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 얼굴도 한 번 못 봐서 자리 한 번 잡을래는데, 홍어로다가 한 번 추진해 보자꾸나. ^^

    • digi 2006/10/30 15:10  address  modify / delete

      홍어도 홍어지만.. 형 때문에 집 사람이 요즘 산토끼 노래를 구슬프게 불러대서 어쩌면 저 노래에 조만간 울 일이 있을 법도 합니다. 요즘 왜 이럴까요? 전문의와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나요? 아아..

    • excuser 2006/10/30 16:26  address  modify / delete

      풋^^ 나야 뭐 노래방에서 클레멘타인을 구슬프게 불러서 몇몇 선배들을 울린 일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