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길거리에 서서

from text 2013/08/29 15:54
내 아이는 언제 커서 어른이 될까? 가을이 왔다고, 혼자 축배를 드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타인의 입으로 듣는 옛사람의 근황이란 어떤 것일까? 지나간 상처, 지나간 노래를 되새기는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자식의 앞날을 재단하는 소갈머리, 내가 몰랐던 걸 지금 이 녀석은 알까? 소주 두어 병을 마시고, 아이를 기다리며 수동 길거리에 서서 흘렸던 생각의 파편들. 아직은 더운 바람을 맞으며, 애닯던 노래를 들으며. 수동행 택시 안에서는 낯모르는 이에게 무언가를 주절거리기도 하였다. 가을을 예감하는 밤, 지나는 거리는 낯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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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말고

from text 2013/08/12 15:58
하찮다. 하찮고 하찮으니 돌도 글도 쥐도 새도 다 하찮다.

그릇이 나머질 결정하지. 아무렴. 근데 그릇은 누가 결정하지? 글쎄, 그거야 나머지가 결정하겠지. 날도 덥고 할 일도 없는데, 술이나 끊어볼까. 그래, 몇 번만 더 먹어보고, 사는 양태를 좀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또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왼손으로 담뱃재를 자연스레 턴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깍지를 끼거나 균형을 맞출 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사용하던 손. 낯설고 두려운 것에 접근할 때 어김없이 떨리던 손.

몰랐다. 돌아보니, 금 밟았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가.

* 며칠째 둘째 놈이 묻는 말이 있다. 맨 처음엔 난데없이 잠 많이 자면 죽어요? 묻더니, 나중엔 밥 많이 먹으면 죽어요? 묻는데, 이야기인즉슨 잠이고 밥이고 오래도록 많이 자거나 먹은 후에는 죽느냐는 거다. 난감한 질문에 성의껏 답을 하다가도, 이어서 왜 그래요? 왜 그렇게 돼 있어요? 묻는 말엔 답이 궁색하다. 엊저녁엔 잘 먹고 놀다말고 갑자기 나는 언제 죽어요? 묻는 바람에 또 애를 먹었다. 어린 철학자가 잠시 떠올랐다.

그때면

from text 2013/07/01 15:59
나이가 다 찬 어느 날엔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지하지 못하고, 싫은 걸 감당하면서, 무얼 맞는 것보단 그게 낫겠다 싶은 거다. 아마도 마지막 행사하는 시위요 위세가 되겠지. 모쪼록 다음 생에는 밑둥치 굵은 나무로 났으면 좋겠다. 보고 싶을 거다. 시원한 그늘이 있거든, 언제 서늘한 가슴이 일거든 나도 한번 슬쩍 떠올려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