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걸 찾던 때가 있었다. 먼 미래의 어느 날처럼 아스라한 그때, 이미 나는 한번 죽었다. 지난겨울엔 많은 눈이 내렸고, 가슴에는 묻는 것이 많아졌다. 오래 추웠고 지칠 무렵 찾아온 온기가 문득 반가웠지만, 꽃샘추위는 동병상련인양 밉지 않았다. 진광불휘(眞光不輝) 네 글자를 며칠 붙들고 있다가 황지우를 다시 만났다. 그의 말처럼 어느 날 나는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흐린 주점에 앉아 먼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보게 될까. 그날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월은 삼월인가, 오늘은 낮부터 자꾸만 졸린다.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토끼가 달렸어. 자기 굴 다섯 번째 입구를 머리 속에 떠올리고 말이야. 마음에는 다섯 개의 별을 그렸지. 세상의 비밀을 이제 슬쩍 엿보았을 뿐인데, 간밤에도 몇 차례 달이 지고 너구리 굴에 잠자던 낙엽은 하늘로 올랐지. 때가 된 건가, 눈밭을 헤치던 토끼는 아가위 붉은 열매도 지나치고 추상같은 전령도 지나쳤어. 까무룩 잠이 들었나, 술이 달더라니, 환약 같은 기억들을 검게 내지르고 토끼는 그예 길게 눕고 말았대.
새로 튼 둥지에서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도 철이고 멀어도 갈 길은 가야 하는 것을, 남은 생과 지나온 자국이 칼바람에 살갗을 에는 양 마냥 시리다. 세상엔 머지않아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필 테지. 사이나 먹은 붉은 열매 같은 것이 목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