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from text 2010/11/15 20:04
어제, 그제 문경에 다녀왔다. 제5회 문경새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 대경초등 저학년부 참가를 이유로 서연이랑 둘이 떠난 여행이다. 대경초등부 경기는 일요일 오전에 시작하지만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하루 일찍 출발하였다. 좀 먼 길에는 기차만 고집하다보니 뜻하지 않은 일들도 생긴다. 몰랐는데 가는 기차는 네 량짜리 경북관광순환테마열차였다. 차량 내외는 온통 울긋불긋하였고, 무슨 이벤트 열차인가 한다고 경주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아주머니와 애들이 바글바글하였다. 좀 있자니 각각의 연령에 맞춘답시고 남행열차부터 은하철도 999까지 아마추어 가수의 라이브 공연도 펼쳐졌다. 점촌역사는 아기자기하면서 여기저기 손댄 정성이 예뻐 보였다.

예약한 숙소 근처에서 한우 모듬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아마 최강부, 학생부 등 낮부터 열리는 대회를 둘러보았다. 부산의 천재로 알려진 초등학교 4학년생 신진서 군(올해 대한생명배 우승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대회뿐만 아니라 올해 열린 전국 초등학생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하였다고 한다. 전문학원에 다니지 않고 특별한 개인 지도 없이 독학으로 이룬 성과라고 하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마 최강부에 출전하여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16강까지 올랐다)의 차분하고 또랑또랑한 얼굴과 서늘한 손매가 기억에 남는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고등학생 형을 열심히 응원한 서연이는 이날 현장에서 신청하여 이상훈 9단과 지도 다면기를 가지기도 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서연이는 16강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대진 추첨 운도 따르지 않은 것이 상대는 작년에 준우승을 하고 이번에 같은 부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였다). 올해 내가 함께한 경기로는 지난 4월 첫 우승한 대회의 예선전에서 한 번 진 후 첫 패배인데, 그날 우승하고 달려와 안긴 후 처음으로 달려와 안기기도 하였다. 습한 온기가 잔뜩 전해지면서 나는 그저 잘했어, 잘했어 다독이는 손에 힘만 들어갔다. 16강까지 감투상을 수여하여 상장과 부상으로 상금 3만원을 받았는데, 그동안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에 상금 넣는 걸 꽤나 즐기던 녀석이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는, 이번엔 아빠 하세요, 낮게 얘기하였다. 간밤에는 피곤하다며 그림일기 숙제도 하지 않고 저 먼저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잠이 들더니, 겉으로는 몰라도 저도 속은 안 좋았던 모양이다.

1박 2일 동안 영화를 네 편 보았다. 숙소에서 밤에는 원티드, 아침에는 터미네이터를 보았고, 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역 근처 DVD방에서 내니맥피 2와 전우치를 달아서 보았다. DVD방에서는 유독 큰 소리로 깔깔대더니 나올 때는 양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까지 상상 속으로 자꾸만 날아다니던 녀석이 어째 애처롭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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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물 소리

from text 2010/11/11 11:05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더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술이라도 끊어 볼 일이다. 그때 그 자리에 앉아 다른 생각만 하였다. 펄펄 날아다니던 것들은 그날 그것이 아니었다. 묵은 사진이 이야기하는 것이 묵은 시절에 대한 게 아닌 것처럼, 지나간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가 없다. 낙엽은 재빨리 움츠리라는 명령,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대 목소리, 어린 체구가 하늘 건너듯 건넌 도랑물 소리보다 멀다.

인터불고 엑스코

from photo/D50 2010/11/07 19:30
결혼한 처제의 배려 덕에 일없이 호텔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서연이와 사우나에서 바둑 한 판을 두고(요즘은 간혹 둘 때면 한 번 이겼다 한 번 졌다 내가 두 점을 놓고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객실 TV로 한참 시간을 때우고는 0124님, 율이와 함께 동보성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침은 예그리나에서 조식 뷔페. 분답기 한이 없는 녀석들, 밥이고 잠이고 알량한 휴식이고 아직은 사치인 걸까. 무기력한 손끝에 겨우 찍은 사진들에서 몇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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