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에 해당되는 글 5건

  1. 보고 싶은 얼굴 2021/10/31
  2. 청춘 2021/10/21
  3. 가을비 오는 날 2021/10/11
  4. 퇴근길 2021/10/08
  5. 녹슬은 해방구와 강매 2021/10/04

보고 싶은 얼굴

from text 2021/10/31 15:52
어쩌다 보니 담배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꼬박 일 년이 지났다. 끊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라 그저 한번 안 피워 보자 했던 것이 그렇게 되었다. 아직 책상 서랍에는 뜯지 않은 담배 두 갑과 일회용 라이터가 있다. 술은 지금도 가급적 줄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대체로 절반 정도 성공한 것 같다. 횟수는 줄고 먹을 때 양은 오히려 늘었달까. 생각해 보면 몸 상태를 따라가는 것이니 기실 바뀐 게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며칠 넷플릭스에서 인간실격을 몰아 보았다. 자의식 과잉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저씨 이후 모처럼 드라마 속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보는 내내 끝까지 다 보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지 생각하였다. 이제 이 세계가 낯선 걸 보면 거기서 긴 세월을 보낸 게 틀림없다. '붉은 꽃그늘 아래서 꽃인 양 부풀었던, 남겨진 혼잣말'들에 복 있을진저. 할렐루야.

* 인간의 자격 /화의 나라 /투명인간 /사람 친구 /이름 없는 고통 /아는 여자 /Broken Hallelujah /다윗과 밧세바 /세 사람 /제자리 /금지된 마음 /유실물 /모르는 사람들 /인간실격 /마침표 /별이 빛나는 한낮

청춘

from text 2021/10/21 15:38
세상에는 멀거나 가까운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어중간하거나 적당한 것도 있는 거지. 불현듯 겨울이 찾아온 시월 중순, 스산한 마음에 올려다 본 하늘에는 별이 한가득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과 주인을 찾지 못한 말들이 거기 있었구나. 술 한 모금에 기억 한 자락씩 흘려보낸다. 남은 기억이 얼마일까. 찬바람에 손을 내밀다 뭉툭하게 끝이 잘렸다. 잠은 줄고 졸음이 늘었다. 부질없이 가는 게 있을까. 떠난 자리는 비는 것인가. 짧은 가을, 가는 세월에 건배.

가을비 오는 날

from text 2021/10/11 19:40
밤새 기온이 10도 이상 뚝 떨어지더니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린다. 여름이 가을로 가는 결정적 길목을 목도한 기분이다. 어쩌다 너는 그 반지를 그 못에다 던지고, 나는 전당포에다 맡기고 찾지 않았을까. 너를 잊으려다, 너를 잊으려던 나를 잊어버렸을까. 시간만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니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 죄다 사라져 버렸다. 굳은살 배긴 발바닥의 기억도, 발굴 현장의 붓자국과 노오란 플레어스커트의 나풀거림도. 빗길을 구르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네 목소리는 들리다 말고, 너는 천천히 내리다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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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from text 2021/10/08 11:17
길어진 저녁, 늦더위 내린 도시의 거리가 새삼스럽다.
시절이 수상한들 세월이 야속한들
계절은 또박또박 구월을 지나 시월로 가고
세모장식, 태성설비, 훈이네분식, 가나헤어살롱
하고많은 간판들을 지나다
인테리어가 한창인 새 이발소 간판을 만났다.
이 시국에 새로 문을 여는 이발소라니
지나갔다고 다 지나간 게 아니구나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하며 박수를 보냈다.
저녁 길은 내리막길
물기 없는 바람이 불고
꽃처럼 잎이 지고,
사무치는 마음이 갈 곳을 모르겠다.

녹슬은 해방구와 강매

from text 2021/10/04 11:07
이 두 노래를 기록하고, 기억하자. 조국과 청춘의 녹슬은 해방구와 윤연선과 윤선애가 부른 김의철의 江梅. 먼저 녹슬은 해방구.

그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 동지들 흘린 피로
앞서간 죽음 저편에 해방의 산마루로 피었지
그해 우린 춥지는 않았어 동지들 체온으로
산천이 추위에 떨면 투쟁의 함성 더욱 뜨겁게

산 너머 가지 위로 초승달 뜨면 멀리 고향 생각 밤을 지새고
수많은 동지들 죽어가던 밤 분노를 삼키며 울기도 했던
나의 청춘을 동지들이여 그대의 투쟁으로 다시 피워라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조국 해방의 약속을

그리고 강매. 내/네는 임의로 손을 보았다. 내 정서에는 이게 맞다. 윤연선은 나 홀로 강가에 피었다 사라져 갈 이름이여로, 윤선애는 너 홀로 강가에 피었다 사라져 갈 이름이여로 불렀다.

내 이름은 외로워 나비도 벌님도 볼 뉘 없어
나 홀로 강가에 피었다 사라져 갈 이름이여
너를 찾아 헤매이다 나의 외로움만 쌓이고
스러진 꽃잎을 찾으려고 등 뒤 해지는 줄 몰랐네
불러도 대답은 간데없고 휘몰아치는 강바람만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말라버린 풀그루를 지나
단 한 번 미소를 줏으려고 그래서 내 이름은 강매라네
단 한 번 그 향기 그리워 그래 내 이름은 강매라네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수줍어 고개 숙인 그대여
님의 맘 다 타버려 재 되어 사라질 날 기다렸나
어제도 오늘도 동틀 제면 너를 찾아 헤매었네
저녁 해 먼산에 걸리어 외로움에 타버렸네
불러도 대답은 간데없고 휘몰아치는 강바람만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말라버린 풀그루를 지나
단 한 번 미소를 줏으려고 그래서 네 이름은 강매라네
단 한 번 그 향기 그리워 그래 네 이름은 강매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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