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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를 지나며

from text 2026/06/21 18:45
어제 해가 유난히 길어 보이더니 오늘이 하지로구나. 다섯 시 구 분에 해가 떠 일곱 시 사십사 분에 진다고 하니 열네 시간 삼십오 분이 낮인 셈이다. 동지를 지나며 새해, 새봄을 맞는 기분으로 가는 해와 이른 가을 냄새를 맡아볼 일이다.

해가 길어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늘어만 가던 몸무게가 열다섯 근이 줄었으며 압력이 조금 낮아졌다. 알 수 없는 피부 질환에 시달렸고 낯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다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술에서 많이 멀어졌다. 밤이 길어지는 동안, 여전히 달라질 건 없지만 또 많은 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다음은 정호승의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작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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