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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 비 2007/09/23
  2. 화려한 휴가 2 2007/08/07

바람, 비

from text 2007/09/23 01:58
자제할려고 많이 노력하면서도 꽤 먹었다. 바람이 불고 난데없이 비도 또 그렇게 내렸다. 서연이와 함께 심신수련장으로, 고산골로, 신천으로 걸어다니고, 늦게 마달일 만났다. 석일이형 가게에서 일차하면서 예의없는 오래 전 친구 하나와 예의바른 젊은 학교 선생님 하나를 마주치면서부터 수상쩍더니, 이차에서 상당히 먹고 말았다. 2GETHER 4EVER, 사람들이 꽤 괜찮은 집이었다. 조곤조곤 옛 이야기(불타던 고교 시절)를 나누다가 어디 이야기한 적도 없고 잊고 있던 걸 하나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찻집에 가면 디제이가 신청곡도 받아주고 사연들도 읊어주던 때였다. 곰 일레븐 이야길 들으면서 혼자 생각나던 백과다방, 아무렇게나 써갈기던 습작시들을 김소월의 시라며 사연에 넣어주면 목소리 좋은 디제이가 배경음악을 멋들어지게 깔아가며 낭송해주곤 했다. 굳이 그 장난을 쳐댄 놈이랑 키득거리며 담배나 죽이던 시절, 그립다. 그 다방으로 전화가 가장 많이 오는 이름 일위에 오르기도 했더랬다.

'그날 이후부터'라는 카페가 있었다. 한네의 이별, 조각배 같은 노래들을 날로 들을 수 있는 집이었다. 그 불타던 시절부터 여러 추억이 서린 곳이다.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정이 무서운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을 게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버린 원규형, 카페 주인 성진이형과 누님, 잔정은 마달이 나보다 더하다.

사람이 가장 즐겁고 흥분하고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건 언제일까.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는 그 때는 언제일까. 그래서 가장 괴로울 때는 언제일까.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그걸 온전히 손에 넣기 전일 것이다. 그래서 오래 살려면 높은 슬기와 변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라이카의 세계에는 궁극이 없다(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게다). 그래서 열에 들떠 오랜 시간 알아보고 매복하고 지른 다음에도 그 열이 식지 않는다. 다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간접 추천으로 이기호의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보았다. 심상대의 묵호를 아는가,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멀리는 정건영의 골패가 떠올랐다. 이야기꾼으로 손색이 없었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한 대목.

이제 이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그들 모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 이야기의 운명 또한 다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들 모자는 어느 곳 어느 땅에서 씨감자를 심고 있을지 모른다. 또 그들 모자가 파종한 씨감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집 앞,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정말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십오 센티미터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마음이 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 몸을 취하던 마달과 정확하게 갈라지던 지점.

* 오늘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화려한 휴가는 결국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애정과는 별도로 한계를 너무 많이 내보였다. 일이십년내 누가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대한 비평에서 미묘하게 갈라지던 사람들, 그 자리들이 일이십년 후 어떤 모양으로 살아있을지 궁금하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게 미덕이던 시절, 가장 냉정하고 날카롭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투항하였더랬다.

화려한 휴가

from text 2007/08/07 17:13
어제 짧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카데미극장에서 화려한 휴가와 다이하드를 보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형석이랑 진탕 마셨다. 녀석 덕에 아주 마음에 드는 바를 하나 알았다. 화려한 휴가는 머꼬의 평도 있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료 사진들을 곁들여 좀 더 다큐멘터리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그리고 따로 노는 안성기와 그 배역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도 있었지만 썩 괜찮았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마 가장 많이 울컥하며 본 영화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설 수 없었다.

언젠가 어느 구석에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뭐 이런 걸 적어넣은 기억이 난다. 율리시즈의 시선, 파업전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부, 동사서독, 박하사탕 등등을 적은 것 같다. 단 한 편만 골라야 한다면 단연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을 꼽겠다(율리시즈의 시선에 대해 이 블로그에 써둔 글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못 찾겠다. 태그가 붙어있는 걸 보니 어둠 속의 댄서 이야기하면서 썼던 것 같은데 글꼴 가지고 이리저리 만지다 날아간 모양이다). 예전 무지개극장에서 마지막 프로를 대여섯명의 관객이 함께 봤다.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든 빔 벤더스 감독은 이십세기에 영화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 영화일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안개 속의 풍경과 그 아름다운 비올라 선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선율을 떠올릴 때면 산타페스토리 앞에 붙은 작은 쿠키집 이츠야미에서 쿠키 구워 팔던 때가 항상 같이 떠오른다. 그때 만나던 그 사람들도. 잔뜩 흐린 날이면 그 선율을 타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하나 추가해둔다. 그게 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