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from text 2007/08/07 17:13
어제 짧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카데미극장에서 화려한 휴가와 다이하드를 보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형석이랑 진탕 마셨다. 녀석 덕에 아주 마음에 드는 바를 하나 알았다. 화려한 휴가는 머꼬의 평도 있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료 사진들을 곁들여 좀 더 다큐멘터리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그리고 따로 노는 안성기와 그 배역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도 있었지만 썩 괜찮았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마 가장 많이 울컥하며 본 영화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설 수 없었다.

언젠가 어느 구석에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뭐 이런 걸 적어넣은 기억이 난다. 율리시즈의 시선, 파업전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부, 동사서독, 박하사탕 등등을 적은 것 같다. 단 한 편만 골라야 한다면 단연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을 꼽겠다(율리시즈의 시선에 대해 이 블로그에 써둔 글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못 찾겠다. 태그가 붙어있는 걸 보니 어둠 속의 댄서 이야기하면서 썼던 것 같은데 글꼴 가지고 이리저리 만지다 날아간 모양이다). 예전 무지개극장에서 마지막 프로를 대여섯명의 관객이 함께 봤다.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든 빔 벤더스 감독은 이십세기에 영화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 영화일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안개 속의 풍경과 그 아름다운 비올라 선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선율을 떠올릴 때면 산타페스토리 앞에 붙은 작은 쿠키집 이츠야미에서 쿠키 구워 팔던 때가 항상 같이 떠오른다. 그때 만나던 그 사람들도. 잔뜩 흐린 날이면 그 선율을 타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하나 추가해둔다. 그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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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리에꽃을 2007/08/09 01: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율리시즈의 시선'을 내 인생의 영화중 한편으로 꼽고 싶습니다.
    같은 극장에서 대여섯 명과 함께 보게 되었는데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지요.
    몇년전 부산영화제에서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특별전을 해서 몇 작품을 보았는데 졸거나 예전만큼 감흥이 없거나 였습니다.
    그 작품들이 '율리시즈의 시선'보다 못해서 라기보다는 지금의 제가 예전만큼 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집중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휴가에 대한 저의 악평은 기대가 컸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나 돌이켜봐도 눈물을 짜낸 것은 '5월 광주의 힘'이지 영화의 힘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름의 사회적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데 의미를 둡니다.
    지하철 참사가 난 그해에 광주로 가는 대형버스 안의 유족들, 대구시민들 중에서 광주에서 일어나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 excuser 2007/08/09 08:51  address  modify / delete

      주변의 아주 일부분의 이야기이지만 신파에 대한 악평을 들을 수 있었는데, 글쎄,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그 생각을 했더랬다. 공부(?)했던, 새기고 있던 그 일, 그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올라서 내가 이러지, 나만 이러나.. 뭐 그런 생각들. 내가 화려한 휴가를 보는 동안 한 관객은 그러더라. 맨 처음 공수의 폭력 장면에서 '왜 저러지?'. 그치만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다른 이야길 잘 못하겠더라. 보는 내내 그 생각도 함께 했더랬다. 영화를 보는 동안 네 악평(?)을 떠올리고선 사실 두가지 생각을 함께 했더랬는데, 넌 역시 대단한 놈이야 하고, 공유하는 기억이 이미 다른 게지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