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6건

  1. 우리는 누구나 2009/06/08
  2. 화려한 휴가 2 2007/08/07
  3. 긴 하루 2006/08/14
  4. 여름, 휴가 2006/08/11
  5. 거제, 괴물 2006/07/29
  6. I've seen it all 2006/07/17

우리는 누구나

from text 2009/06/08 23:56
일요일 오후,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과 마더를 보았다. 터미네이터는 1, 2편의 신화를 제대로 계승하고 진화하여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으로 손색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적절한 오마쥬로 지난 시리즈를 기리고 이야기를 완결함으로써 신화를 기억하는 이들을 위무하고 산뜻한 출발과 롱런을 기약하였다. 진정한 3편이자 1편.

제 허벅지에 침을 놓고 몸을 흔든다고 가슴의 응어리와 나쁜 기억을 떨칠 수야 없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마더가 아니라도 무언가를 위해 그렇게 몸부림친 경험이 있다. 그 기억이 새겨진 자리는 봄이면 새살이 돋다가도 잎이 지고 새가 울면 때맞춰 터지고 갈라진다. 경계하지 아니할 것을 경계하게 하고 경계할 것을 경계하지 아니하게 한다. 가꾸지 않으면 황폐하기 마련,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키지 않는다.

* 그보다 며칠 전엔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을 보았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서연이와 함께였는데 녀석이 이만큼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연방 무섭다면서 저도 나처럼 이 환상적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꼼짝없이 빨려들고 말았나 보다. 그 세계가 인상적이었던지 나중에 제 어미가 원작 코랄린을 사다 주었을 때에도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독파하는 걸 보았다. 유령신부,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함께 기억할 이름, 팀 버튼, 그리고 헨리 셀릭.

화려한 휴가

from text 2007/08/07 17:13
어제 짧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카데미극장에서 화려한 휴가와 다이하드를 보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형석이랑 진탕 마셨다. 녀석 덕에 아주 마음에 드는 바를 하나 알았다. 화려한 휴가는 머꼬의 평도 있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료 사진들을 곁들여 좀 더 다큐멘터리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그리고 따로 노는 안성기와 그 배역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도 있었지만 썩 괜찮았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마 가장 많이 울컥하며 본 영화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설 수 없었다.

언젠가 어느 구석에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뭐 이런 걸 적어넣은 기억이 난다. 율리시즈의 시선, 파업전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부, 동사서독, 박하사탕 등등을 적은 것 같다. 단 한 편만 골라야 한다면 단연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을 꼽겠다(율리시즈의 시선에 대해 이 블로그에 써둔 글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못 찾겠다. 태그가 붙어있는 걸 보니 어둠 속의 댄서 이야기하면서 썼던 것 같은데 글꼴 가지고 이리저리 만지다 날아간 모양이다). 예전 무지개극장에서 마지막 프로를 대여섯명의 관객이 함께 봤다.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든 빔 벤더스 감독은 이십세기에 영화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 영화일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안개 속의 풍경과 그 아름다운 비올라 선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선율을 떠올릴 때면 산타페스토리 앞에 붙은 작은 쿠키집 이츠야미에서 쿠키 구워 팔던 때가 항상 같이 떠오른다. 그때 만나던 그 사람들도. 잔뜩 흐린 날이면 그 선율을 타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하나 추가해둔다. 그게 다가 아니다.

긴 하루

from photo/D50 2006/08/14 07:46
토요일 하루 재미있게 보내기로 마음 먹고 정오쯤 길을 나서는데, 이 녀석이 꼭 사진기를 가져가잔다. 해서 50미리 하나 달랑 챙겨 나섰다. 시원한데서 0124님 일 마치기까지 다섯 시간 가량 보낼 요량으로 이마트 칠성점으로 갔다. 메가박스에서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을, 한 이십분 가량 보고 잠든 녀석 덕에, 혼자 잘 봤다. 노래가 썩 괜찮았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정글나라 놀이방에서 잠시 놀다 0124님과 형수네 식구들을 만났다.

인근 송정동태에서 냉면이랑 동태찌개로 저녁 먹고, 형수네가 가기로 했다던 우방랜드로 나들이 갔다. 마냥 흥겹고 씩씩한 아이들과 무더위 덕에 지치고 힘들었지만, 뭔가 해낸 뿌듯함으로 우리는 우리를 달래기 위해 자정 가까운 시간에 계전 돌계단 아래 HAMA 호프집으로 향했다. 시원한 맥주가 피워낸 난데없는 한밤중의 이야기꽃은 아줌마들의 의기투합으로 다시 이마트 칠성점 근처 형수네 집에까지 이어졌다.

복분자주 몇 개 비우고, 아이들부터 아줌마들까지 하나하나 잠이 들고, 동이 트는 걸 보고서야 형수도 나도 잠이 들었다. 멍한 가운데 아픈 속을 달래고자 들안길 바르미 칼국수에서 점심을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니 오후 네시가 가깝다. 이래저래 휴가는 끝나고, 어디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듯, 피곤한 가운데도 즐겁고 따뜻하다. 근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이 휴가가 나의 일상 같고 또다시 출근하여 일을 하는 게 특별한 활동 같으니, 쩝.

여름, 휴가

from text 2006/08/11 01:11
짧은 술자리가 불러온 상념들.

처한 환경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 봄은 겨울이 끝나서, 여름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 나른함이 싫어서, 여름은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어서, 가을은 아아 너무 짧아서, 떨어지는 그 잎들이 너무 아쉬워서 그럴 수 있겠지, 겨울은 춥고, 어떤 날,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갈 데란 게 그리 많은 게 아닌데, 그럴 수 있을까, 이것도 다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희망찬 생각을 해 보자고, 봄은 이른바 만물이 돋아나고, 추운 겨울이 가고, 여름은 자라날 대로 자라나고, 따사로운 햇살을 우리가 알게 하고, 가을은 여름이 가고, 아아 여름이 가고, 사는 보람을 일으키고, 기다리는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은 움츠리고, 예비하고, 모이고, 사랑하는데, 아아, 이렇게 다 사랑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한 번 돌이키면 다 사랑할 수 있는데, 지금, 이, 여름만은, 이것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구나. 너무 더워 어쩔 수가 없구나. 그 때문에 사랑하던 나머지도 다 어쩔 수가 없구나.

어제부터 시작한 여름휴가. 어제는 하루 종일 빈둥대고(티브이를 통해 살인의 추억과 쇼생크 탈출을 번갈아 보았으며,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와 마찬가지로 웹에서 다 읽은 줄 알면서 구매한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와 심심풀이 땅콩인 줄 알고 산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들추다 말다 하였다), 오늘은 망설이다 외출을 감행하였다. 볼 영화가 없어 헤매다 중앙시네마에서 '한반도'를 예매하고 교보문고엘 잠시 들렀다. '제일서적'이 완전히 없어진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촌놈마냥 예전 로얄호텔 건물을 한참이나 올려다봤더랬다. 문태준의 새 시집과 미시마 유키오를 만났다 라는 소설이 기억에 남는다.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이 둔황의 사랑으로 문지에서 새로(?) 나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읽었던 죽음의 한 연구(내가 읽은 죽음의 한 연구는 옛날 종화형 자취방에서 무작정 뽑아 들고온 것이었다. 그 책이 눈에 띈 것은 기억하건대 세계의 문학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아 실린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보고서였다. 절대 돌려주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오래 갖고 있다 몇 번 독촉받고는 돌려주고 말았다) 개정판을 살까 말까 잠시 망설였으며, 통로까지 차지하고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놀랐다.

한반도 흥행이 괴물에 뒤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우석은 완성도에 대해서만은 관객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우쳤을까. 과도한 캐스팅이 눈에 띄었으며, 교전권을 부여받는 제독과 대통령의 무전에서는 찬 에어컨 바람을 무색케 할만한 전율이 일었음을 고백한다.

지나치기 전에, 소통, 연결, 연대, 이렇게 적고 보니 그 옛날 술친구 생각도 난다마는, 그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도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란 말인가. 아아 십년도 넘은 그 시절 그와 같은 이야길 내뱉은 그녀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거제, 괴물

from text 2006/07/29 12:14
한 모임에서 27~28일 이틀간 거제엘 다녀왔다. 고성 공룡나라휴게소, 녹차 음식, 한산도 제승당, 달아공원, 여차해수욕장, 능성어와 돔, 노래방, 해물된장찌개, 삼천포대교, 연어튀김과 참게탕, 파이어월과 음란서생, 비오는 섬진강이 기억에 남는다. 차 탄 시간이 너무 길었고, 역시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분명하다)에 시달렸다. 저녁에는 또 다른 모임에서 식구들이랑 ‘괴물’을 보고, 마달네랑 형석이네랑 뉴욕뉴욕에서 간단한 식사와 호프.

괴물은 봉준호라는 이름과 몇몇 스틸에서 연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였다. 그래서 기대와 달랐는지 모르겠지만, '80년대'를 연상시키는 몇몇 장면들이 흥미로웠다. 다시 보는 후일담이랄까. 괜히 상념에 젖기도 하였는데,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고 이미지만 차용한 듯한 방식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왔다.

I've seen it all

from text 2006/07/17 16:35
볼 때는 재미있게 보고 첫 손 꼽을 만큼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다시 보게 되지 않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다. 파이란, 박하사탕, 올드보이 같은 영화들이다. '비극(적)'이어서일까, 어쩌다 채널 서핑 중 방영하는 걸 보게 되면 한참 고정하고 보게 되지만(끝까지 보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사다 놓은 디브이디 타이틀도 다시 보게 되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도 그랬다. 디브이디 타이틀을 사서 보았는데, 그래도 구입한 디브이디 타이틀 중 가장 아깝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웬만한 시디보다 자주 재생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본 경우는 한 번도 없지만, 영화음악 골라 듣듯이 한 챕터(열세번째 챕터!)만 계속 반복하여 보고 듣곤 한다. 오늘도 연휴 마지막 날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보다가 문득 떠올라 오랜만에 디브이디 전원을 켜고 이 챕터만 반복하여 보고 들었다. 노랫말과 주인공 비요크가 직접 부른 그 애절한 노래, 그리고 그 영상(어떻게 이런 편집을 할 수 있었을까)에 푹 빠져서. 이 놈의 음치는 영상 없이는 음악이 들리지 않으니 더욱 그럴밖에.

I've seen it all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보면 이 챕터도 사실 꽤나 비극적인데, 어째 자꾸만 보고 싶은 걸까. 같이 등장하는 피터 스토메어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영화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