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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 날 어느 때 2009/08/12
  2. 여름잠 2007/08/16

어느 날 어느 때

from text 2009/08/12 23:47
가을 하늘이 푸르고 아름답다는
그저 그것만으로
어쩐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때는 없는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허무하게 땅에 떨어지는 분수도
쓸쓸하게 가지를 떠나는 낙엽 한 잎마저
어쩐지 기쁨에 겨워 춤추는 양 보이는
그런 때가

유정 편역의 일본현대 대표시선에서 쿠로다 사부로오의 시 '어느날 어느때' 전문. 전세 계약 기한은 다가오지만 어째 나갈 일은 멀기만 하여 이사 이후로 미뤄두었던 집안 정리와 재편을 감행하였다. 거실에 있던 TV와 홈시어터 시스템을 없애고(TV는 중고재활용센터에, 홈시어터 시스템은 동생에게 넘겼다) 어렸을 때부터 쓰던 책장에 새로 산 원목 책장 둘을 더해 거실 한쪽 벽면을 서가로 꾸몄으며 컴퓨터를 거실로 내오고 좌탁과 장식장 위에 놓을 책꽂이도 새로 구입하였다. 어지럽던 물건들과 작은방 둘도 말끔히 정리하였더니 새로 이사한 기분인 것이 진을 빼버려 이제 고대하던 이사 일정이 잡힌대도 옮길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이다.

마루야마 겐지에 빠진 와중에 머리를 식히며 읽은 책 중 추천하는 한 권. 강명관의 '是非를 던지다'. 글 솜씨도 좋지만 따뜻한 심성과 시각이 좋아 더 정겹게 읽혔다. 읽는 내내 정민의 글과 비교가 되었다. 본문 중 이익의 붕당론에서 한 대목.

이제 열 사람이 꼭 같이 굶고 있다가 밥 한 그릇을 먹게 되었다고 해 보자. 그릇을 다 비우기 전에 싸움이 벌어진다. 물어보니, 말이 불손한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싸움이 불손한 말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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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잠

from text 2007/08/16 16:31
장마대신 우기(雨期)라는 용어를 쓰자는 말을 들으니 밀림, 원숭이, 바나나, 세렝게티 초원 뭐 이런 게 두서없이 떠오르면서 눅눅하고 더운 기운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 낮 업무 보러 잠시 나갔다 왔는데 참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가본 적 없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디 가서 여름잠이라도 실컷 자고 왔으면 딱 좋겠다 생각했다. 이게 다 이것대로 즐기면 좋을 텐데 아직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중에서 한 대목을 재인용해 본다. 이춘풍이 아내에게 이르는 말로 원 출처는 古典國文小說選.

자네 내 말 들어보소. 사환 대실이는 술 한 잔을 못 먹어도 돈 한푼을 못 모으고, 이각동이는 오십이 다 되도록 주색을 몰랐어도 남의 집 사환을 못 면하고, 탑골 북동이는 투전 골패 몰랐어도 수천 금을 다 없애고 굶어 죽었으니, 일로 볼작시면 주색잡기 하다가도 못사는 이 별로 없네. 자네 차차 내 말 잠깐 들어보소. 술 잘 먹는 이태백도 노자작(鸕鶿酌) 앵무배(鸚鵡杯)로 백년 삼만 육천일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杯)에 매일 장취하였어도 한림학사(翰林學士)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하였어도 나중에 잘 되어서 일품 벼슬하였으니, 일로 볼지라도 주색잡기 좋아하기 남아의 상사(常事)로다. 나도 이리 노닐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