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에 해당되는 글 2건

  1. 어느 날 어느 때 2009/08/12
  2. M6 열여덟 번째 롤 2007/10/19

어느 날 어느 때

from text 2009/08/12 23:47
가을 하늘이 푸르고 아름답다는
그저 그것만으로
어쩐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때는 없는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허무하게 땅에 떨어지는 분수도
쓸쓸하게 가지를 떠나는 낙엽 한 잎마저
어쩐지 기쁨에 겨워 춤추는 양 보이는
그런 때가

유정 편역의 일본현대 대표시선에서 쿠로다 사부로오의 시 '어느날 어느때' 전문. 전세 계약 기한은 다가오지만 어째 나갈 일은 멀기만 하여 이사 이후로 미뤄두었던 집안 정리와 재편을 감행하였다. 거실에 있던 TV와 홈시어터 시스템을 없애고(TV는 중고재활용센터에, 홈시어터 시스템은 동생에게 넘겼다) 어렸을 때부터 쓰던 책장에 새로 산 원목 책장 둘을 더해 거실 한쪽 벽면을 서가로 꾸몄으며 컴퓨터를 거실로 내오고 좌탁과 장식장 위에 놓을 책꽂이도 새로 구입하였다. 어지럽던 물건들과 작은방 둘도 말끔히 정리하였더니 새로 이사한 기분인 것이 진을 빼버려 이제 고대하던 이사 일정이 잡힌대도 옮길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이다.

마루야마 겐지에 빠진 와중에 머리를 식히며 읽은 책 중 추천하는 한 권. 강명관의 '是非를 던지다'. 글 솜씨도 좋지만 따뜻한 심성과 시각이 좋아 더 정겹게 읽혔다. 읽는 내내 정민의 글과 비교가 되었다. 본문 중 이익의 붕당론에서 한 대목.

이제 열 사람이 꼭 같이 굶고 있다가 밥 한 그릇을 먹게 되었다고 해 보자. 그릇을 다 비우기 전에 싸움이 벌어진다. 물어보니, 말이 불손한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싸움이 불손한 말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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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6 열여덟 번째 롤

from photo/M6 2007/10/19 01:41
지난 일요일, 모처럼 산엘 올랐다. 서연이가 잘 걸어준 덕에 충혼탑 옆 주차장에서부터 약수터 조금 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저녁에 신천이라도 매일 걸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정색을 하고 책으로 펴낸 글보다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더 살갑고 재미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웹에서는 뜻은 좋으나 여러모로 문장이 난삽하여 얻을 것만 얻고 지나치게 되는데 막상 펴낸 책은 잘 다듬어져 있어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다. 앞의 것은 정민의 책 읽는 소리를 다 읽고나서 느낀 것이고, 뒤의 것은 우석훈의 책들을 짧게 훑어보고 느낀 것이다. 선비의 삶을 비롯하여 옛글을 읽는 재미야 유별난 데가 있지만(특히 정민처럼 문장이 좋은 경우에는 더욱), 한 가지, 술 익었다 대신 부르러 가고 편지 전하러 가는 종놈이나 당시 세상을 떠받치던 생산자들의 눈과 세계는 어쩐단 말이냐,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조선일보 기고 글이 많아서일까, 괜한 트집이라도 잡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킹콩을 빌려다 봤는데, 다른 건 다 몰라도, 킹콩이 많은 일을 끝낸 것처럼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은 오래 안 잊혀질 것 같다. 그 장엄함과 우수라니.

평생 마실 술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노을처럼 오래 오래 붙들고 싶다. 인정이고 술이고 아낄밖에.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후지 오토오토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