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from text 2007/04/10 15:10
사르트르는 일찍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창조주를 믿지 않는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언설이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무한정 확장시켜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소통과 연대에서 출발하고 귀결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도 점차 단절과 소외가 일상화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이 추구하여야 할 가치라는 것도 잊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대다수 사람에게 사는 목적을 생각할 겨를은 없어져 버렸으며 그럴 겨를이 있는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 살아간다.

이제 동네 길거리에서 어른들이 어린 아이를 꾸짖는 모습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사라졌고 흙은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만 하여도 버스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들을 보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많아졌다. 정작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회피하고 치장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유는 소중하다. 자유를 확장하는 물질적 조건도 마찬가지로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곰곰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유가 행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김남주는 만인을 위하여 노력할 때 나는 자유라고 이야기하였으며 니체는 무엇에 대하여 자유롭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최선의 것은 지금의 파괴를 가속화해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 터놓고 술 한 잔 기울일 친구가 없어 매일매일 자신을 조금씩 죽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꾸미고 거짓 대화를 하며 남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남을 위하여 사는 게 아닌 다음에야 자신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따뜻한 동화 한 편 써보려던 것이 메모만 나열한 글이 되고 말았다. 삶은 달걀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부활절을 기린다며 멀쩡한 달걀을 집단적으로 대량으로 삶아 먹고 나누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설령 무정란이라 할지라도.

지난 4월 8일은 결혼 6주년 되는 날이었다. 기념일 알리미 서비스 덕에 일주일 전부터 새기고 있었는데 막상 당일은 잊어먹고 지나가 버렸다.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인데, 참한 아가씨가 오래된 친구나 후배를 만나 사귀거나 결혼한다면 꼭 하는 말이기도 한데, 서연이나 이 사람이 자는 모습을 보면 꼭 떠오르는 말인데,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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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gi 2007/04/10 22: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참 공감갑니다.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리게 해줘서 참 고맙습니다. 그렇다고 형이 참한 아가씨라는 말은 아니고.. 말입니다. (말투 때문에 말인데 그.. 얼마 전 민방위 교육 다녀왔습니다. 이제 그 교육이란 거도 끝입니다. 소집만 남았습니다. 총각 때 민방위가 될 무렵 아버지께서 예비군이 민방위 되면 남자 구실 끝난 거라고.. 하셨던가.. 그런 말이 있다고 하셨던가.. 그랬는데.. 그마저도..)

    • excuser 2007/04/11 09:58  address  modify / delete

      어제, 그 시절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울렁거리던 철수형, 상준이형, 광근이, 나중에 학성이를 만났다. 1차에서 광근이가 가버렸고, 3차에서 상준이형이 가버렸다. 현장의 목소리와 현장보다 치열한 삶을 만났다. 보석같은 삶들을 만났다. 학원으로의 성공적인 진출들보다 낯선 것은 철수형의 NL로의 전향이었다. 디테일만 조금 달라졌을 뿐 형들은 그대로였으며 우리는 우리식으로 낡아가는 중이었다.

      새로 포스팅하려다가 여기다 숨겨둔다. 참한 사람을 만나 참한 삶을 꾸리고 있는 반짝이는 지윤이 아빠 글에다가..

    • excuser 2007/04/12 08:56  address  modify / delete

      철수형은 줄곧 상준이형을 보고 이야기하였으며 상준이형은 나만 보고 이야기를 하는 기이한 방식의 대화였다.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며 늘상 그렇듯 그 다양한 결에 대해 겸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