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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3 2007/04/10
  2. 여름, 휴가 2006/08/11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from text 2007/04/10 15:10
사르트르는 일찍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창조주를 믿지 않는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언설이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무한정 확장시켜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소통과 연대에서 출발하고 귀결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도 점차 단절과 소외가 일상화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이 추구하여야 할 가치라는 것도 잊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대다수 사람에게 사는 목적을 생각할 겨를은 없어져 버렸으며 그럴 겨를이 있는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 살아간다.

이제 동네 길거리에서 어른들이 어린 아이를 꾸짖는 모습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사라졌고 흙은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만 하여도 버스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들을 보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많아졌다. 정작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회피하고 치장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유는 소중하다. 자유를 확장하는 물질적 조건도 마찬가지로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곰곰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유가 행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김남주는 만인을 위하여 노력할 때 나는 자유라고 이야기하였으며 니체는 무엇에 대하여 자유롭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최선의 것은 지금의 파괴를 가속화해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 터놓고 술 한 잔 기울일 친구가 없어 매일매일 자신을 조금씩 죽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꾸미고 거짓 대화를 하며 남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남을 위하여 사는 게 아닌 다음에야 자신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따뜻한 동화 한 편 써보려던 것이 메모만 나열한 글이 되고 말았다. 삶은 달걀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부활절을 기린다며 멀쩡한 달걀을 집단적으로 대량으로 삶아 먹고 나누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설령 무정란이라 할지라도.

지난 4월 8일은 결혼 6주년 되는 날이었다. 기념일 알리미 서비스 덕에 일주일 전부터 새기고 있었는데 막상 당일은 잊어먹고 지나가 버렸다.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인데, 참한 아가씨가 오래된 친구나 후배를 만나 사귀거나 결혼한다면 꼭 하는 말이기도 한데, 서연이나 이 사람이 자는 모습을 보면 꼭 떠오르는 말인데, 참 고맙다.

여름, 휴가

from text 2006/08/11 01:11
짧은 술자리가 불러온 상념들.

처한 환경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 봄은 겨울이 끝나서, 여름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 나른함이 싫어서, 여름은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어서, 가을은 아아 너무 짧아서, 떨어지는 그 잎들이 너무 아쉬워서 그럴 수 있겠지, 겨울은 춥고, 어떤 날,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갈 데란 게 그리 많은 게 아닌데, 그럴 수 있을까, 이것도 다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희망찬 생각을 해 보자고, 봄은 이른바 만물이 돋아나고, 추운 겨울이 가고, 여름은 자라날 대로 자라나고, 따사로운 햇살을 우리가 알게 하고, 가을은 여름이 가고, 아아 여름이 가고, 사는 보람을 일으키고, 기다리는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은 움츠리고, 예비하고, 모이고, 사랑하는데, 아아, 이렇게 다 사랑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한 번 돌이키면 다 사랑할 수 있는데, 지금, 이, 여름만은, 이것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구나. 너무 더워 어쩔 수가 없구나. 그 때문에 사랑하던 나머지도 다 어쩔 수가 없구나.

어제부터 시작한 여름휴가. 어제는 하루 종일 빈둥대고(티브이를 통해 살인의 추억과 쇼생크 탈출을 번갈아 보았으며,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와 마찬가지로 웹에서 다 읽은 줄 알면서 구매한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와 심심풀이 땅콩인 줄 알고 산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들추다 말다 하였다), 오늘은 망설이다 외출을 감행하였다. 볼 영화가 없어 헤매다 중앙시네마에서 '한반도'를 예매하고 교보문고엘 잠시 들렀다. '제일서적'이 완전히 없어진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촌놈마냥 예전 로얄호텔 건물을 한참이나 올려다봤더랬다. 문태준의 새 시집과 미시마 유키오를 만났다 라는 소설이 기억에 남는다.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이 둔황의 사랑으로 문지에서 새로(?) 나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읽었던 죽음의 한 연구(내가 읽은 죽음의 한 연구는 옛날 종화형 자취방에서 무작정 뽑아 들고온 것이었다. 그 책이 눈에 띈 것은 기억하건대 세계의 문학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아 실린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보고서였다. 절대 돌려주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오래 갖고 있다 몇 번 독촉받고는 돌려주고 말았다) 개정판을 살까 말까 잠시 망설였으며, 통로까지 차지하고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놀랐다.

한반도 흥행이 괴물에 뒤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우석은 완성도에 대해서만은 관객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우쳤을까. 과도한 캐스팅이 눈에 띄었으며, 교전권을 부여받는 제독과 대통령의 무전에서는 찬 에어컨 바람을 무색케 할만한 전율이 일었음을 고백한다.

지나치기 전에, 소통, 연결, 연대, 이렇게 적고 보니 그 옛날 술친구 생각도 난다마는, 그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도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란 말인가. 아아 십년도 넘은 그 시절 그와 같은 이야길 내뱉은 그녀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