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을 살았다면 룸펜으로 살았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용기가 있었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면 다 떨어진 낭만이나마 비굴하지 않게 한 세상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인정 많은 사람들을 만나 영 굶주리지는 않았겠지. 한때 룸펜 같던 삶과 그 정신의 한 자락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다가오지 않는데 다가갈 일 없다. 자꾸 오락가락하는 건 나이와 술 탓이겠지. 다 부질없다가도 다 붙들고 싶기도 한 것이.
육 개월이면 사라질 감정이어도, 더는 특별하지 않아 다시 볼 수 없을 사람이어도, 행여 어떤 후회가 일어도 멈추거나 돌아갈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상처를 훈장처럼 가슴에 단 채, 파국 이전에는 무얼 바꾸거나 되돌릴 수 없다. 흉터처럼 남은 사랑은 때가 되면 다른 흉터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찾기도 하지만, 상처를 만드는 통쾌함과 아무는 가려움을 잊지 못한다. 여전히 멈추거나 돌아가지 않는다. 파국 이후에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
매화가 지고 목련이 피었다. 서양수수꽃다리는 새잎을 내밀었다. 어김없는 반복에도, 노인은 졸고 아기는 잔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 오고, 가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