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새, 눈물

from text 2021/03/27 21:56
어쩌다 송창식의 밤눈을 듣고 곡조가 좋아 집에서는 물론이고 2차로 자주 가는 술집에서도 몇 번 청해 들었는데, 오늘 아침 꽃, 새, 눈물이란 곡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밤눈과 마찬가지로 1집 발표곡이며 둘 다 최인호의 시에 곡을 붙였단다. 같은 가수의 노래라도 유튜브에서 여러 라이브 공연을 찾아보는 재미가 또 쏠쏠한데, 송창식이야 말해 무엇하랴만, 김은영의 이 노래도 가히 일품이다. 지금껏 어떤 곡보다 제대로 반한 듯, 봄이 가고 꽃이 져도 한참을 듣겠다.

그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떨어져서 꽃이 되었네
그 꽃이 자라서 예쁘게 피면
한 송이 꺾어다가 창가에 앉아
새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어
지는 봄 서러워 부르고 말아
아 가누나 봄이 가누나
아 지누나 꽃이 지누나

* 2015년 1월의 어느 술자리였다. 가련한 청춘에게 세상 저편인 듯 보석처럼 날아든 문장 하나를 옮겨 둔다. 어떤 시와 노래, 어떤 곡조로도 이 문장을 이기지 못하므로. 함께 불행해도 좋겠단 생각. 그때의 나. 그때 나의 전부였던 당신. 묻어두는 일이 그리 만만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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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from text 2021/03/25 07:08
어머니 가시고부터 밑반찬을 사거나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일이 늘었다. 하기 쉬워 예전부터 한 번씩 하던 카레, 김치찌개, 통조림꽁치찌개, 부대찌개, 돼지고기김치볶음을 주로 하고, 어쩌다 기분이 내키면 별식으로 감자샐러드, 김치전, 햄버거를 만들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녀석의 175에 90을 육박하는 식욕 핑계로 최근에는 생전 안 만들던 음식도 제법 만들었다. 찜닭, 애호박돼지찌개, 돼지고기가지볶음, 된장찌개에 삼겹살수육, 오삼불고기, 시래기고등어조림까지. 대식가이자 미식가인 녀석의 말을 빌리면 지금까지 계속 최고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작은 재주가 있었나, 나도 어디서 이만한 음식은 잘 먹어보지 못하였다. 동네 시장에서는 오징어나 고등어, 시래기 같은 걸 사며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의 음식 비법이랄까 주의할 점도 듣고, 때때로 중늙은이를 보는 살가운 눈빛과 홍고추 몇 개 정도는 거저 얻어오고는 한다.

지지난해를 돌아보니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던 길들만 떠오른다. 그해 다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봄과 여름의 언덕배기 길과 가을, 겨울의 어두운 골목길과 신천,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이 손에 잡힐 것 같다가도 더없이 아련하기만 하다. 지난해에는 이월에 어머니를 여의고 일상을 천천히 회복하였으며 시월에 집을 샀다. 백내장과 녹내장에 알 수 없는 가려움증이 함께 살고 있으며 한 번 술을 마시면 사나흘은 앓는다. 어쩌랴, 온 세상이 신종 감염병으로 시름하는 중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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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남는 사람

from text 2021/03/24 11:09
지난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유튜브 순례 중 우연히 OBS 경인TV에서 2013년 2월 방영된 멜로다큐 가족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보았다. 정선 단임골에 사는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에 빠져 2008년 3월 방영된 KBS의 인간극장 '꽃순이와 나무꾼'까지 찾아보았고, 꽃순이와 나무꾼이 잠깐 함께 부르는 노래에 반해 그 노래를 찾아 여러 버전으로 몇 날 며칠 반복해 들었다. 한동안 나도 마치 단임골 어디에 사는 것만 같았다. 심장에 남는 사람.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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