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ext 2009/05/09 23:47
어제오늘 통영에서 뱃길 사십오 분 거리의 욕지도에 다녀왔다. 기억 속의 남해섬에 비길 바는 아니었으나 고즈넉하고 예쁜 섬이었다. 풍경을 잘 찍지 않는데다 일행(나까지 노소 남자 일곱 명)을 담을 일은 더욱 없겠다 싶어 귀찮은 마음에 사진기를 챙기지 않았는데 막상 담고 싶은 풍광이 많아 아쉬웠다.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선상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는 점점이 박힌 섬들까지 그대로 담백한 수묵화였다. 섬은 황토색 비탈밭과 색색깔 지붕을 인 낮은 집들이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곱기 이를 데 없었으나 관광버스와 사람들, 이국적인 펜션들로 어지럽기도 했다.

숙소 주변에서는 모처럼 바닷가 낙조를 즐길 수 있었다. 내 속 어딘가도 새빨간 자국을 남기고 해가 지자마자 건너편엔 하얗게 달이 떴는데, 아침이면 저기서 다시 붉은 덩어리가 떠오르겠거니 했다. 시뻘건 초고추장에 날것 그대로의 앙상한 욕망을 나눈, 저마다의 봄밤, 보름을 하루 앞둔 달이 하도 밝아 별은 보이지 않는데 바다에 부서진 달빛은 천 갈래 만 갈래 제가끔 먼 곳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돌아올 때 보니 육지도 너도 하나의 섬이더라. 곱고 어지러운 하나의 파멸이더라.

헤아려 보니 육십일 일째 술 한 방울 담배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이런 걸 세는 걸 보니 다시 먹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 육십오 일째 되던 날, 제대로 먹고 말았다. 그리운 봄밤, 보배로우면서도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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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from photo/D50 2009/05/0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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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from text 2009/05/04 22:52
낯선 오월의 시작, 나흘 연휴를 그저 흘려보내긴 아쉬울 듯해 색색이 채 가시지 않은 멍을 달고 혼자 '박쥐'를 보러 나섰다. 어제오늘 왼쪽 새끼발가락에 몇 년 잊고 있던 무좀까지 도져 절뚝거리며 동성로 거리를 지나다녔다. 대기는 뜨거웠고, 작은 머리는 이내 열로 가득 차 일찍 지쳤다. CGV 아이맥스관, 욕망과 죄의식에 대한 그럴듯한 설정과 변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상징이 흥미로웠다. 성당인지 수도원인지 배경이 된 곳은 돌 벤치 하나하나, 자갈까지도 손에 잡힐 듯 그리운 것이었다. 가외로는 여자의 행위와 변명에 대한 오래된 것의 재확인도 있었다. 다음은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서 한 대목. 얼핏 지나간 모든 것들이 영역을 재배치한다. 제가끔 삐걱댄다.

그러나 그건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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