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명

from text 2009/03/18 20:16
사십여 일 술도 담배도 멀리 하였다. 반가운 얼굴들, 어쩔 수 없는 자리, 돌아온 봄을 핑계로 서너 차례 많고 적게 마시고 피웠으나, 열흘 가량은 참말 딱 잊고 지냈다. 욕망이 거세된 듯 거짓말처럼 조금도 생각나지 않고 주변의 유혹도 방해도 없었다. 매주 꼬박꼬박 기약 없이 이어지는 치과 진료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사는 모양이 제법 달라지기도 한 것이다.

어제오늘 집 앞 도로변에 피기 시작한 벚꽃이며 오며가며 남의 집에 핀 소담한 목련을 보고도 무심키만 하더니, 한낮 봄바람에 실려 멀리 그늘진 옹벽에 샛노랗게 핀 개나리 한 무리를 보고는 꽃을 두고도 한잔 술을 떠올리지 못하는 생에 대하여 잠시 생각하였다. 부질없는 고집과 날리는 꽃잎보다 가벼운 사람살이며, 오가는 계절과 가고 오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오래 생각하였다. 무릇 진통 없는 생산이야 없을 터, 비로소 너와 나는 이렇게 근접하는 것인가, 슬픈 밀명에 울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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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리오

from text 2009/03/16 00:11
사라지는 해를 잡으려 부러진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였다. 봄이 오다만 길목, 지워진 메아리가 울고 있었다. 절정의 순간을 미루거나 지나친 흔적들이 거기, 살고 있었다. 어차피 눈 한번 돌리는 대로 재구성되는 세상이었거니, 한 꺼풀 벗겨낸 자리엔 색색이 셀로판지 모양 예쁜 꽃이 피었다. 후미진 술집 낡은 모니터에선, 후욱, 썩은 입김을 타고 멜빵바지, 화면 위로 가볍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조용히 구겨져 나발이나 불고 더 낮게 욕이라도 웅얼거릴 때가 좋았지, 상마다 곱게 얹힌 검은 머릴 신나게 퉁겨 오르고 있었다. 봄이 돌아간 길목, 그렇게 버려진 꿈들이 버섯보다 거대하게 부풀고 있었다.

봄, 그러나

from text 2009/03/10 14:36
어제 왼 주문. 어찌 이만한 행사에 한잔 술이 없으랴. 결속과 이별이 곱게 내려앉는 봄, 삼백 년 하고도 석 달 열흘 만의 술에 한 개비 궐련이 또한 없으랴.

다음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주제 사라마구. 늘 맹세를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의지가 약해서, 때로는 우리가 고려하지 못했던 어떤 우월한 힘 때문에.

* 지난달, 무려 0.049% 확률의 카드사 경품 응모에 당첨되었다. 애플의 아이팟 터치 2세대. 제세공과금 22%를 물고 손에 쥔 행운, 잠시 만져보곤 왜 '애플'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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