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처럼

from text 2007/09/15 09:48
네가 벌써 자동차를 갖게 되었으니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도 하다
운전을 배울 때는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을
네가 대견스러웠다
면허증은 무엇이나 따두는 것이
좋다고 나도 여러 번 말했었지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 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앞으로 기름값이 또 오르고
매연이 눈앞을 가려도
너는 차를 두고
걸어다니려 하지 않을 테지
걷거나 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남들이 보내는 젊은 나이를 너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지나가고 있구나
네가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볍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김광규의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라는 시이다. 내용 중에 생각나는 대목만 두서없이 검색해본 탓에 몇 번 찾아도 못 찾겠더니 아침에 불현듯 제목이 떠올라 찾았다. 운전하지 않는 핑계거리에 들어맞아 공감하고 있었는데, 어제 들은 말마따나 그래도 놓치는 것만큼이나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어디 자동차뿐이겠느냐. 가지 않은 길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일탈의 욕망은 그래서 어디에나 꿈틀대는 법.

민들레 달인 걸 며칠째 먹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같이 한 사람이 좋아서 그런가, 많이 마신 것 치고는 몸이 가뿐하다. 그리 좋은 몸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마실수록 술 욕심이 나던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준탱이가 또 멀리 간다. 육지를 벗어나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심정이 나로서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고 제 몫이 있겠지만 그를 보면 어깨가 절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세월이 살같이 간다는데 술자리를 하다보면 종종 그렇지만 시작부터 중반까지 가는 시간과 후반에 이르러 가는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그만큼 안타깝게 부여잡고 싶은 시간들을 두고 나는 또 어찌 갈꼬.

즐거운 고민

from text 2007/09/08 16:56
어제는 난생 처음 활짝 갠 날을 보고 반갑다는 생각을 다 했는데, 늦게까지 한 잔 하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보고는 우선 드는 마음이 또 반갑고 좋았다.

연말에 가면 이것저것 다 떠나서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을 지지할 테다 굳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여전히 고민이 좀 될 것 같다. 문국현이 제대로 뜬다면 여러 사람 고민에 빠뜨리는 걸까, 여러 사람 고민을 해결해 주는 걸까. 너와 나는 지금 어느 쪽에 속해 있는가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 서연이와 이발하고 어린이회관과 수성못으로 놀러가기로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술병을 핑계로 겨우겨우 달래어 다 내일로 미루었다. 이미 내일은 앞산공원에 가기로 했었으니 일정이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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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부 이야기

from text 2007/08/31 15:08
오래 전 어디에선가 본 이 이야기가 며칠째 떠올라 찾아보았으나, 분명 메모를 해둔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 해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고 꽤 여러 버전이 돌아다닌다는 것과 생각보다 이런 이야기에 발끈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았다. 애초 보았던 글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훨씬 짧고 간결하였고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 같은데, 어쨌든 찾은 것 중엔 제일 나아보인다.

어제는 어머니 생신이셨다. 서연이 때문에 케이크 사러 갔다가 초가 몇 개 필요하냔 말에 늘 나신 연도만 기억하고 있다가 연세를 셈해 보고는 조금 놀랐다. 잠시 가슴 한 곳에 구멍이 난 듯 바람이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공주식당에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걸로 식구들 모두 푸짐하게 먹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어머니.


멕시코로 휴가를 온 한 미국인 사업가가 해변 마을을 거닐다 부두에서 한 어부를 발견했다. 어부는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사업가는 어부에게 얼마 동안 작업해 그렇게 많은 고기를 잡았는지 물었다. "글쎄요. 몇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좀더 작업하지 않았나요?" 어부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 이만큼만 해도 제 가족이 먹고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죠. 더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업가적 기질이 발동한 미국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당신은 남는 시간에는 뭘 하고 지냅니까?" "남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놀거나, 친구들과 술도 한 잔 기울이곤 하죠. 전 이 생활에 만족한답니다."

사업가는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 하버드에서 MBA 과정을 마친 사업가입니다. 자, 한번 봅시다. 당신은 고기 잡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조업시간을 늘리면 고기를 더 많이 잡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좀 더 큰 배를 살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지나면 여러 대의 배를 소유하게 되고 선주가 되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면 아마 통조림 사업에도 뛰어들 수 있을 겁니다. 사업이 확장되면 아마도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맨해튼에 저택을 짓고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겠지요."

어부는 곰곰이 생각한 뒤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사업가는 한참 동안 계산기를 두드렸다. "15년이나 20년 뒤면 가능하겠군요." "그런데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죠?" 사업가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백만장자가 되겠지요." "백만장자라구요? 그리고 나서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당신이 원한다면 퇴직을 해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겠지요. 당신과 당신 가족들만을 위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작은 해변에 그림 같은 별장을 짓고, 당신의 노후를 만끽할 수 있다는 얘기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제 생각에 저는 그 15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전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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