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언

from text 2007/09/30 22:07
어느 날, 한 여인이 간디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간디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그 여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걸어왔는데, 간디에게 아들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쉬지 않고 설탕을 먹는답니다. 아이에게 설탕이 몸에 좋지 않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도대체 제 말을 듣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들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아이에게 설탕 좀 그만 먹으라고 말씀해 주세요." 간디는 그 아이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 어머니에게 열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때는 여름인데다 그 여인의 집은 아주 멀었기 때문에 여인은 크게 실망하면서 돌아갔다. 열흘 뒤, 그 여인은 아들과 함께 다시 간디를 찾아왔다. 간디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설탕이 몸에 좋지 않으니 설탕을 그만 먹으라고 말했다. 그 여인은 간디에게 고마워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간단히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되는데 왜 지난 번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건가요? 왜 다시 오라고 하신 거죠?" 그러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저도 지난 번까지는 설탕을 먹고 있었거든요."

참 사람 좋은 김용락 선생의 어떤 글에서 처음 읽은 건데, 사실 여부는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知行合一', '言行一致'와 함께 항상 마음에 짓누르듯이 새기게 된다.

어제, 그제,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크게 꾸밈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은 시간이 없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오래 전 사다놓고 이제야 읽기 시작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어느 현처가 긴 편지의 말미에 덧붙인 유명한 양해의 일절이란다. 예쁘다.

화두

from text 2007/09/26 11:20
떠남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는 떠나는 것만 보인다. 아기를 가졌을 때는 아기를 가진 사람만 보이는 것처럼. 좋은 글, 좋은 책은 매번 다르게 읽힌다. 좋은 사람도 그렇다.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거다.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줄을 일찍 알았던 탓. 푸른 깨꽃이 다 내 편인 줄 알았던 거다. 누구한테도 이길 수 있게 되고부터 누구에게나 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가고 나면 빈 들판에 잡풀만 무성할밖에.

* 추석날 밤, 막내 처고모 내외, 0124님, 처제, 사촌 처제와 그 부군될 사람과 오래 술을 먹었다. 청주, 막걸리, 소주, 복분자주까지 섞어 먹었더니 몸도 마음도 제 자리를 못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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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비

from text 2007/09/23 01:58
자제할려고 많이 노력하면서도 꽤 먹었다. 바람이 불고 난데없이 비도 또 그렇게 내렸다. 서연이와 함께 심신수련장으로, 고산골로, 신천으로 걸어다니고, 늦게 마달일 만났다. 석일이형 가게에서 일차하면서 예의없는 오래 전 친구 하나와 예의바른 젊은 학교 선생님 하나를 마주치면서부터 수상쩍더니, 이차에서 상당히 먹고 말았다. 2GETHER 4EVER, 사람들이 꽤 괜찮은 집이었다. 조곤조곤 옛 이야기(불타던 고교 시절)를 나누다가 어디 이야기한 적도 없고 잊고 있던 걸 하나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찻집에 가면 디제이가 신청곡도 받아주고 사연들도 읊어주던 때였다. 곰 일레븐 이야길 들으면서 혼자 생각나던 백과다방, 아무렇게나 써갈기던 습작시들을 김소월의 시라며 사연에 넣어주면 목소리 좋은 디제이가 배경음악을 멋들어지게 깔아가며 낭송해주곤 했다. 굳이 그 장난을 쳐댄 놈이랑 키득거리며 담배나 죽이던 시절, 그립다. 그 다방으로 전화가 가장 많이 오는 이름 일위에 오르기도 했더랬다.

'그날 이후부터'라는 카페가 있었다. 한네의 이별, 조각배 같은 노래들을 날로 들을 수 있는 집이었다. 그 불타던 시절부터 여러 추억이 서린 곳이다.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정이 무서운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을 게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버린 원규형, 카페 주인 성진이형과 누님, 잔정은 마달이 나보다 더하다.

사람이 가장 즐겁고 흥분하고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건 언제일까.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는 그 때는 언제일까. 그래서 가장 괴로울 때는 언제일까.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그걸 온전히 손에 넣기 전일 것이다. 그래서 오래 살려면 높은 슬기와 변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라이카의 세계에는 궁극이 없다(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게다). 그래서 열에 들떠 오랜 시간 알아보고 매복하고 지른 다음에도 그 열이 식지 않는다. 다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간접 추천으로 이기호의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보았다. 심상대의 묵호를 아는가,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멀리는 정건영의 골패가 떠올랐다. 이야기꾼으로 손색이 없었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한 대목.

이제 이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그들 모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 이야기의 운명 또한 다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들 모자는 어느 곳 어느 땅에서 씨감자를 심고 있을지 모른다. 또 그들 모자가 파종한 씨감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집 앞,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정말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십오 센티미터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마음이 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 몸을 취하던 마달과 정확하게 갈라지던 지점.

* 오늘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화려한 휴가는 결국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애정과는 별도로 한계를 너무 많이 내보였다. 일이십년내 누가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대한 비평에서 미묘하게 갈라지던 사람들, 그 자리들이 일이십년 후 어떤 모양으로 살아있을지 궁금하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게 미덕이던 시절, 가장 냉정하고 날카롭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투항하였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