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from text 2007/07/29 09:11
그렇지, 그렇고 말고. 어제 술자리 대화중 문득 떠오른 '高者는 先勝 以後 求戰하나, 下者는 先戰 以後 求勝한다'는 조남철 기사 이야기.

그리고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뭐, 주당의 단수(段數), 당대의 주당으로 통한 시인 조지훈이 술을 마시는 격조, 품격, 스타일, 주량 등을 따져서 밝혀 놓았다는 주도의 18단계.

  1. 불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까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먹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이 안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 주졸(酒卒)
10. 애주(愛酒) :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 기주(嗜酒) : 술의 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眈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 주도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廢酒) : 술로 인해 다른 술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열반주(涅槃酒) 9단

나는 새처럼

from text 2007/07/27 10:00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제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역시 여러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살다보면 부득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거짓으로 치장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기대는 잣대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르다면 뭐 그리 신뢰할 만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자신에게조차 때와 기분에 따라 다른 잣대를 갖다대는 사람에 대해서야 더 일러 무엇 하겠는가. 이런 사람과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댄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겠는데, 어제는 대놓고 ‘말이야 좋은 말입니다만’ 하고는 피식 웃어주고 말았다. 눈동자에서는 나도 모르게 불이 조금 일었을 텐데 눈치나 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잘난 척 하기 좋아하고 눈치도 빠르던데 말이다.

그리고 또 어떤 유형이 있을까? 대체로 말이 많은 사람 중에 쓸만한 사람이 없다. 드물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재치와 유머를 갖추고 예를 아는 수다쟁이라면 환영할 일이겠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친해진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장되었거나 아예 지어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날카로운 직관력에서 뿜어져나오는 경구와 유머가 빠져있다. 즉흥적으로 다시 남지 않을 이야기들을 그렇게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상습적으로 핑계를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잘 이해할 수 없는 경우인데 고칠 수 있을 것 같거나 정이 가는 경우에는 다 표나니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곤 한다. 왜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령 자기만 안다고 한들 자기는 알지 않는가 말이다. 시쳇말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기가 알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새처럼 가볍지만 서늘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그립다. 진짜가 없다. 매무새 예쁜 사람이 그립다. 한때 참 고왔을 사람이 역시 곱게 늙는 법이다. 이제 알았다.

* 어제는 또 뭐가 그리 아쉽고 허전한지 애꿎은 술만 잔뜩 죽였더랬다. 아무래도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이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씨앤, 코요테어글리, 녹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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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

from text 2007/07/25 09:09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 내가 보기에는 아직 다듬어지기 전의 서연이가 그렇다. 아비들끼리는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객관의 눈을 견지한다는 나로서도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 이 녀석을 보는 순간 확실히 알았다.

자라길 그렇게 자랐는지 남에게 보이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로서는 최근에야 자기만족이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하게 되었는데, 팔불출이라 욕먹을 일이겠지만 지향하는 바가 눈앞에 떡하니 펼쳐져 있으니 더욱 그럴 밖에. 지난 번 파마를 했을 때도 그랬지만 요즘 조금 머릴 길러보는 것도(옛날 생각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녀석 때문이었다. 그런데 잔뜩 취해서 들어와 자고 일어나 덥다고 짧게 자른 이 녀석 머릴 보자니 그렇게 시원하고 깔끔해 보일 수가 없는 게 이발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어렵다. 그런다고 이 녀석처럼 멋있어질리는 만무하겠지만 말이다. 요즘 한번씩 보자면 나도 모르게 말투도 이 녀석을 따라하는 게 열렬한 팬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뭔가 좀 부끄럽지만 덜 깬 핑계로다가 올려본다. 뭐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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