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이야길 들으니, 서연이 녀석, 피아노학원에서 높은음자리, 낮은음자리를 익히고 진도가 꽤 빠른 모양이다.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전부터 배우고 있던 몇몇 아이들의 진도를 넘어섰다니 말이다.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아마도 이 녀석 바이러스에 감염된 선생님들이 거칠고 어설픈 모양을 버리고 친절하고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착각한대도 할 수 없다.

그저께 아침에는 글씨 쓰는 일에 재미 붙인 녀석의 노트를 들춰보다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나는 가을에 피는 꽃이에요', 놀라는 마음 한편 밀려오는 어떤 감동을 느끼며 한참 되읽고 되읽었다. 그리고 다른 장을 펼쳐보는데, 거기에는 '나는 봄에 피는 꽃이에요', '나는 겨울에 만드는 거예요'가 써있지 않은가. 이런, 알고 보니 우리가 즐겨하는 수수께끼 놀이를 옮겨놓은 것이었다. 허나, 착각도 이런 착각이라면 평생을 하고 싶달밖에.

현실이라는 것에 반쯤만 발을 딛고 무언가에 취해 일생을 보낸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워낙에 현실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반쪽 살다 가는 삶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결국 마지막 갈 때 웃으며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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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2

from text 2007/10/31 17:44
모든 열병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지나온 길에 발자국 하나를 더할 것이냐, 길을 지울 것이냐는 온전한 자신의 몫. 난생 처음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는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서산을 바라본다. 더딘 걸음에 그림자가 길다.

두 번째 생일

from text 2007/10/29 14:05
음력과 양력이 일치하는 생일, 기억에는 두 번째 맞는 생일이다. 내가 태어난 게 누군가에게 고마운 일일 수 있을까. 손끝에서 타는 담배를 보며 소멸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덩어리로 떨어지던 재가 바람에 폴폴 날아다녔다.

그게 얼마나 큰지 나는 몰랐다. 내가 아는 세상만 알 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하긴, 한번은 올 줄 알았던 지도 모른다. 그만큼은 나도 기다렸으니까. 이제, 때를 기다리며 잔뜩 웅크린 벌레처럼, 터질지언정, 그저 꿈틀거리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누군들 알 수 있을까. 그렇게 한 세월 가고 나면, 터져서 붉게 물든 서산이 무엇을 노래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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