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처럼

from text 2007/07/27 10:00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제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역시 여러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살다보면 부득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거짓으로 치장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기대는 잣대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르다면 뭐 그리 신뢰할 만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자신에게조차 때와 기분에 따라 다른 잣대를 갖다대는 사람에 대해서야 더 일러 무엇 하겠는가. 이런 사람과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댄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겠는데, 어제는 대놓고 ‘말이야 좋은 말입니다만’ 하고는 피식 웃어주고 말았다. 눈동자에서는 나도 모르게 불이 조금 일었을 텐데 눈치나 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잘난 척 하기 좋아하고 눈치도 빠르던데 말이다.

그리고 또 어떤 유형이 있을까? 대체로 말이 많은 사람 중에 쓸만한 사람이 없다. 드물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재치와 유머를 갖추고 예를 아는 수다쟁이라면 환영할 일이겠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친해진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장되었거나 아예 지어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날카로운 직관력에서 뿜어져나오는 경구와 유머가 빠져있다. 즉흥적으로 다시 남지 않을 이야기들을 그렇게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상습적으로 핑계를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잘 이해할 수 없는 경우인데 고칠 수 있을 것 같거나 정이 가는 경우에는 다 표나니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곤 한다. 왜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령 자기만 안다고 한들 자기는 알지 않는가 말이다. 시쳇말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기가 알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새처럼 가볍지만 서늘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그립다. 진짜가 없다. 매무새 예쁜 사람이 그립다. 한때 참 고왔을 사람이 역시 곱게 늙는 법이다. 이제 알았다.

* 어제는 또 뭐가 그리 아쉽고 허전한지 애꿎은 술만 잔뜩 죽였더랬다. 아무래도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이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씨앤, 코요테어글리, 녹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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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

from text 2007/07/25 09:09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 내가 보기에는 아직 다듬어지기 전의 서연이가 그렇다. 아비들끼리는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객관의 눈을 견지한다는 나로서도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 이 녀석을 보는 순간 확실히 알았다.

자라길 그렇게 자랐는지 남에게 보이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로서는 최근에야 자기만족이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하게 되었는데, 팔불출이라 욕먹을 일이겠지만 지향하는 바가 눈앞에 떡하니 펼쳐져 있으니 더욱 그럴 밖에. 지난 번 파마를 했을 때도 그랬지만 요즘 조금 머릴 길러보는 것도(옛날 생각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녀석 때문이었다. 그런데 잔뜩 취해서 들어와 자고 일어나 덥다고 짧게 자른 이 녀석 머릴 보자니 그렇게 시원하고 깔끔해 보일 수가 없는 게 이발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어렵다. 그런다고 이 녀석처럼 멋있어질리는 만무하겠지만 말이다. 요즘 한번씩 보자면 나도 모르게 말투도 이 녀석을 따라하는 게 열렬한 팬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뭔가 좀 부끄럽지만 덜 깬 핑계로다가 올려본다. 뭐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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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친구

from text 2007/07/21 13:48
술친구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거의 유일하게 여자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인데, 대학 동기생이지만 나보다 한 살이 많던가 그랬다. 이 친구는 서점에서 그냥 책을 들고 나오는 방면엔 선수였다. 그렇게 들고 나온 책을 몇 권 받기도 했다. 주로 동성로 뒷골목 지하 깡통 맥주집에서 쥐포를 뜯으며 술을 마셨는데, 그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게 분명한 깡통 쌓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마시다 보면 내가 먼저 쓰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인간의 소통불가능성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잘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여간 그 친구 덕에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과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알았고, 빌린 그 책은 그 친구가 결혼할 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라며 돌려주지 않았다. 아주 특이한 글씨체를 가진 친구였다. 일이학년 때 종종 어울리다가 어설픈 '사랑과 혁명'에 빠져 오래 보지 못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친구가 결혼하기까지 한동안 만났다. 언젠가 길을 걷다 우연히 아기를 안고 가는 걸 보고 잠시 얘기 나눈 게 마지막이다. 그게 벌써 한 십여 년 되었다.

그리고 정호와 준탱이를 빼놓을 수 없다. 서너 살씩 적은 후배들이지만 참 많은 정을 쌓았다. 이들은 지금 너무 멀리 있다. 하나는 부천에서 바쁘게 살고 있고 하나는 (지금은 잠시 들어와 있지만) 대양을 떠돌고 있다. 떨어져 있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언제나 그랬듯 다시 계전 앞 돌계단에서 함께 쓰러져 자고 싶다. 다리뼈 하나씩만 남기고 뼈째 통닭을 다 뜯어먹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이런저런 핑계로 술잔을 나누고 싶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숨은 열정을 확인하고 싶다.

나이가 들고 오랜 시간 술친구는 마달이었다. 그리고 후에 형석이가 합류하였다. 0124님처럼 지금도 만나는 술친구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닮은 구석이 없어 나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인연은 그랬다. 차곡차곡 술자리와 술병들을 쌓다보면 저릿하게 느껴오는 동질감이 있다. 섣부르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친구란 많지 않은 법이다. 다 다르고 하나만 비슷하여도 되는 그 하나를 가진 놈들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어제, 동해 바다를 잠시 보고 왔다. 간간이 비가 뿌리는 가운데 바람에 일렁이는 바다에는 갈매기 몇 마리만 바빴다. 깊이 숨겨놓은 풍광인 듯 일행 몰래 나만 본 듯한 느낌을 간직하고 왔더랬는데, 돌아오고 나서도 좋은 술친구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에 그 바다, 그 갈매기처럼 계속 마음이 울렁이고 바빴더랬다.

* 아, 다 쓰고 보니 하맹이 빠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후까지 줄기차게 같이 마셔댄 친구이자 진정한 박카스의 세계로 접어든 친구인데, 친구들끼리 몰래 간 이차, 삼차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온다던지 파계를 앞둔 비구니 스님이랑 같이 술을 마신 이야기, 암자에 공부하러 가서는 처음에 술을 말리며 이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던 스님이 나중에는 이 친구에게 등을 내밀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온다. 내가 한번씩 잠시 동안 술을 끊겠다면 준탱이는 제가 좋아서 찾고 위로받을 때는 언제고 몸 좀 그렇다고 멀리 해서야 되겠냐며 일침을 놓곤 했지만, 정작 이 친구 앞에서 제가 술을 좀 사리다가는 '슬픈 생각을 해 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어야 했다.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외상이 깔렸고 낡고 찌그러진 그 집들에서는 항상 그 친구가 들고 간 심수봉 언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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