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는 그 이름이 폭포요, 들에 핀 꽃은 그 자체가 들에 핀 꽃이다. 소한과 대한 사이 가는 햇살에도 산이 무너지고 멀쩡하던 연인이 헤어진다. 누구는 자빠지고 누구는 자빠진 김에 일어나지 않는다. 수염이 자라고부터 꼬박 일주일을 면도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이 겨울, 침묵을 두고 너도 멀리 가려느냐. 면역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 문득 옛날이 그리워 송창식과 한영애의 목련을 반복하여 듣는다. '가만히 떠는 그 물'과 '늦가을 설운 정'을 생각하며 오래된 나무의 도수에 취한다. 바깥 세상에도 어느새 노을이 진다. '언젠가 사월이면' 너도 아름답게 물들일.
첫눈이 온 날, 혁명 기념일에 기념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생각한다. 하얗게 변하는 세상을 보며, 성냥불처럼 꺼졌어도 화약으로 타올랐던 이들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첫눈이 오면 만나기로 한 사람도 생각한다. 그 사람은 이미 까맣게 잊었거나 첫눈을 핑계로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세월에 녹아 벌써 없어졌고 어쩌면 나처럼 장소와 사람이 연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그저 첫눈을 보며 가물가물 옛일을 생각한다. 시절이 좋아 어디서든 단 한 번을 기다리지 않고 다만 먼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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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동행 친구들과 토, 일 거제도에 다녀왔다. 이 모임에서 식구들 빼고 일박으로 어디 다녀온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남다른 감회들이 있었다. 덕포해수욕장에 있는 한 친구의 옛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조개찜과 구이를 안주로 술을 잔뜩 먹고 노래방에 가 노래도 불렀다. 아침은 인근에서 굴국밥, 점심은 돌아오는 길에 밀양 유천본동식당에서 잡어추어탕을 먹었다. 역사가 있는 집인 모양인데 우거지를 넣고 잡어로 추어탕처럼 끓여 낸 게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오가며 해저터널과 거가대교, 짙푸른 바다가 인상에 남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든 오랜 친구들과 대화가 좋았다. 사계동행은 만나고 나면 늘 배우고 조금 더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인연이 여기에 이른 것에 감사한다. 누구의 건배사처럼 육십에도 무사히 보기를. 여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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