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고 갑자기 확 늙어 버린, 기분 좋게 나이 든 이 느낌이 썩 낯설지 않다. 죽은 세포가 살아난 것처럼 오래 잊고 있던 어떤 감각이 비틀거리거나 꿈틀거렸다. 내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게 해 준 사람들이 있다. 그 덕에 세상의 이치와 허무에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 속살도 보고 이면도 볼 수 있었다. 미련이나 회한이 없을 수 없겠지만 크게 아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볼 것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달, 한 주에 한두 번 꼴로 앞산(성불산으로 부르자는 이야기가 있으며, 대체로 산성산과 대덕산을 아울러 일컫는다) 일대를 돌아다녔다. 정상으로 오르기도 하고 둘레를 걷기도 하고 적당히 섞기도 하면서. 낯설었으나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들이 있다. 토굴암, 법장사, 은적사, 대덕사, 안일사 같은 절들과 잣나무숲, 만수정, 성불정, 평안동산 같은 곳, 그리고 고산골, 큰골, 안지랑골, 용두골, 달비골에 이르기까지. 가까이 이만한 데가 있어 계절도, 사람도, 나무와 돌도 예사롭지 않게 볼 수 있으니 복도 이런 복이 없다. 다니다 보면 언제나 말이 없는 줄 알았던 것이 어떤 날은 세상의 비밀을 슬쩍 일러주기도 하고, 세월에 닳고 새 기억에 낡아 엔간히 무디어진 줄 알았던 어떤 것이 가슴 저 밑에서 시퍼렇게 날이 서 오기도 한다. 아무렴, 뜻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결코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지나고 보면 거기 문득 너와 내가 있는 것이다.
며칠 생각이 많았다. 술도 많이 먹고 오래 걷기도 하였다. 하릴없는 잡생각일 뿐이지만 여물지 않은 새가슴이 뻔한 핑계라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미리 겪는 일이란 게 다 좋은 건 아니구나. 멈췄을 때 심장 소리가 더 잘 들리는 이치인가. 오래 걷다 보면 문득 살고 싶어진다. 살고 있음에도 무언가 절박하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유리알 같던 새가슴이 잠시 여물기도 하고 어차피 혼자라는 생각이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정처 없으나 영락없는 일이다. 근육을 더 길러야 하나.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