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하는 마음으로, 허나 결코 달게 받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걷고 또 걷는다. 상류를 향해 용두교에서 가창교에 이르는 길에는 이미 가을이 묻어 있다. 다른 세상인 듯 끄트머리 어디쯤에는 옛 마을의 정취도 있고 함께 뛰어노는 애들도 있다. 지구만 한 보름달이 당산나무에 걸렸구나. 어지럽고 고즈넉하여 잠시 멈춰 섰다 돌아서 다시 길을 걷는다. 지나온 길이 길이 아니구나, 내가 내가 아니구나 하다가 나도 따라 어디 다리 밑에 걸린다. 얼쑤, 굿춤 추듯 춤을 춘다.
늦기 전에 시작하여 다행이다. 어스름을 전후하여 길 잃은 노래를 부르고 순례자처럼 땀을 흘린다. 길이 없는 길을 걷는다. 어디든 길인 길을 걷는다. 꽃이 있고 물이 흐르고 어디든 나무가 자란다. 피가 돌고 시간이 거꾸로 간다. 가다 보면 네가 있고 너와 내가 떨어진 자리가 있다.
비 갠 후에는 잠자리 떼가 여럿 출몰하였고, 이끼 낀 돌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시작하였으니 늦지 않았다. 소멸이어도, 누구도 망가지지 않는 즐거운 중독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