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from text 2022/11/10 18:08
세상 나무들이 단풍에 든다. 지난봄 새로 잎이 나올 때처럼 서럽지는 않다.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의 마음이 다를까. 이별이 예정되어 있어도 제가끔 할 일을 한다. 엽록소도 안토시아닌과 카로틴도 제 몫을 다했다. 수면을 일렁이는 바람의 양에 따라 거기 사는 물고기의 양이 정해진다지. 신진대사의 절정이어라. 바람이 불고, 단풍이 든다.

병 속의 새

from text 2022/11/02 21:06
인간이 존엄할까, 인간은 존엄한가 묻는다면
존엄한 인간이 있고,
존엄할 때나 존엄한 때가 있다고 답할밖에.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니
참으로 덧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병 속의 새는
병 속이 딱 세상의 전부가 아닌가 되물을밖에.

아버지의 역사

from text 2022/10/29 01:02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는 따뜻함과 해학이 있다. 남도 사투리의 정겨움 속에 어쩐지 슬픔과 아픔이 있으며, 물 흐르듯 읽히는 중에 저도 모르게 웃고 울게 된다. 웃으며 울거나 울면서 웃게 된다. 사람의 도리와, 사람이 무어며 사람이 산다는 게 무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면 글을 쓰겠다는 허망을 한때 치기로 알고 진작에 그만두기를 얼마나 잘했나 싶다. 어쩐지 마음이 시린 작중 한 대목.

낮잠에서 깨어난 나를 다음 날 아침이라고 원껏 곯린 아버지는 잔뜩 뿔이 난 내 손에 햇살처럼 고운 홍옥 한알을 건네주었다. 이가 시리도록 새콤한 홍옥을 베어 물며 돌아오던 신작로에는 키 큰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산들거렸다.

읽으면서 우일문의 시시한 역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았다.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역사가 될 오늘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내일이라고 다를까, 예나 지금이나 진짜는 드문 법이다. 밤이 깊다. 자꾸 뭔가를 놓고 싶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