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from text 2006/06/30 14:18
김규항의 블로그에 갔다가 '행복한 책읽기'를 보았다. 그 도저한 상상력과 예민한 촉수에 흔들리던 날들이 떠오른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권성우의 '비평의 매혹'과 함께 한참 푹 빠져서 읽은 기억이 난다. 누군가 행복한 책읽기는 책 읽기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꼭 등산 예찬론(등산 길잡이?) 같다고 이야기한 걸 나중에 본 일이 있지만, 참 그랬다. 지금도 한번씩 등산이 하고 싶거나, 등산을 꾸준히 해볼까 나름 심각하게 고민할 때쯤이면 이 책이 떠오른다.

김현이 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소롭게도 그럼 이제 나의 시는 누가 읽어주나 뇌까리고 있었다. 태맹이형에게서 김현 읽어봤나 라는 말을 들은 이후 김현의 글들을 찾아 읽으며 그 세계로 점점 빠져들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문에 그가 가고 난 후 목포에도 가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권성우의 비평의 매혹을, 아니 권성우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책의 한 단락을 이루는 글의 첫머리,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목놓아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찾아보니 한 글자 안 틀리네)는 대목이다. 그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평론가가 될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예전에 행복한 책읽기에서 메모해 놓은 글들.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불안감에서 해방되려 한다. 위대한 선동가는 그것을 이용하여 우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것을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길을 제시한다. 그 길이 축제로 변할 수 있을 때 혁명은 완성된다

마르크시즘은 철학적 개념의 히말라야 산맥이지만, 히말라야에서 뛰어노는 꼬마 토끼가 계곡의 코끼리보다 더 크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 루카치 '체험된 사유 말해진 기억'

시는 시로 읽어야 한다. 그의 시는 그의 시의 구체성 속에서 이해되어야지 그것을 낳은 논리 속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진보주의자인 척할 때는, 사소한 것에 과격해지고, 본질적인 것에는 무관심해진다 - 김치수

남들이 다 병들어 있으면, 아프지 않더라도, 아프지 않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젊은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있다면 사랑과 혁명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도피이며 혁명은 좌절이다 - 김현 '사회와 윤리'

개구리 이야기

from text 2006/06/25 00:17
개구리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폴짝 폴짝' 잘 뛰었습니다.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폴짝' 피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구리는 커다란 뱀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개구리는 몸을 삭여가며 긴 여행을 해야 했습니다.

팔이 하나쯤 없어질 때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빛을 찾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다 없어져도 좋았습니다.

개구리는 희망을 갖고 이리 저리 살펴 보았습니다.
아, 저만치 앞에서 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개구리는 힘껏 뛰어뛰어 그 곳에 갔습니다 - 벌써 몸의 반은 삭아 없어졌습니다.
그것은, 빛이 나는 그것은 동료의 뼈였습니다.
개구리는 모든 희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개구리는 생각했습니다.
'이 동료는 여기까지 와서 죽었다.'
'나는 반이나 산채로 여기까지 왔다.'
'몸이 다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지 않았던가.'
그리고 개구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개구리는 힘을 내어 다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동료 개구리들을 보았습니다.
앉은 채로 몸을 삭이는 개구리…….
결국은 나갈 수 없다고 외치는 개구리…….
힘을 낭비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살자는 개구리…….
우리의 개구리는 어느 개구리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위는 온통 암흑이고, 동료 개구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개구리는 전혀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빛.
나아갈수록 개구리는 자신과 빛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멀리까지 와서야 개구리는 자신의 몸이 다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빛조차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아니 언제까지나 빛은 자신과 같이 존재한다는 것을…….


고등학교 이학년 겨울, 교지에 시라고 준 것이 쉬어가는 페이지에 실렸다. 독서토론회(하야로비)를 맡고 있어 청탁으로 쓴 글인데, 어린 시절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인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쓴 글 두 편 중 하나. 하나는 어딜 가고 없다.

제목은 개구리 이야기. 후에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세 학교 연합독서토론회(날개)를 만들었는데, 다른 학교 후배들로부터 개구리 선배로 불리는 계기가 되기도. ~읍니다를 ~습니다로 수정.

지금도 데미안이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 따위에 실리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이 작자들이 읽기나 하고 이런 짓거린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독서란 게 원체 읽는 놈(의 처지나 환경, 기반, 상태 등등) 마다 다르고, 같은 놈이 읽어도 읽을 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그리고 괜찮은 책 치고 위험하지 않은 책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대상에 따라 정도는 가려야 할 게 아니겠는가.


고등학교 때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말 하나. 神이 인간에 준 가장 큰 축복은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둘이서, 앞산공원

from photo/D50 2006/06/24 22:58
열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서연이와 둘이서 앞산공원엘 다녀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에 올라 한참을 걸었다. 몇몇 연인들과 등산객들이 보였으며 어린이와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는데, 칭얼대지 않고 잘 걸어서 내심 뿌듯하였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영 자유롭지 못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는 보훈청 앞까지 걸었는데, 에피소드 두 개.

충혼탑 맞은편 즈음 걸을 무렵, 갑자기 "응가, 응가" 하길래 급한 마음에 한 십여 미터 앞에 있는 대게집으로 들어가 좋게 부탁하고 화장실에 갔더니 웬걸, 들어오다 카운터에서 본 박하사탕 타령이나 하며 용변 볼 생각을 않는다. 괜찮단다. 반갑게 맞던 아주머니의 표정이 그럴 수 없이 싸늘하게 식던 게 눈에 선한데, 말리다 안돼 눈치 보며 뚜껑 덮인 병에서 하나 꺼내 주니 "큰 거, 큰 거"를 외친다.

보훈청 가까이 거의 내려와 주택가 골목을 지나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아주머니와 할머니들 대여섯 분 앉아 계시는 가게 앞으로 냉큼 뛰어가 “안녕 하 세 요” 배꼽인살 하며 외치더니, 기특타, 착하다 인사말씀 끝나기도 전에 가게 앞에 엎드린 강아지한테 똑같이 허리 숙여 "안녕 하 세 요오"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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