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을 써라. 관절과 뼈를 이용하라. 볕을 쬐고 염분을 섭취하라. 뇌를 움직여 몸을 이동하라. 시간을 붙잡고 공간을 장악하라. 너를 놓아라. 세포를 분열하고 꽃목을 꺾어 뿌리를 단절하라. 이면을 보라. 미래와 결별하고 과거를 분질러라. 반상에 돌을 놓듯 잔을 놓아라. 나를 차단하라. 수맥을 뚫고 천천히 길을 놓아라. 울고 싶을 때 울어라. 그리고 조용히 숨을 놓아라.
1988년, 1학년 때의 일이다. 학내 농성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이 이런저런 얘기 끝에 세 학번 이른 같은 과 4학년 형이 뜬금없이 간통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형은 무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의 하나였고 학년 차이가 있어 자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던 터였다. 나는 각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여 법으로 강제할 일은 아니라고 답했고, 그 형은 여성의 지위와 대우가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 사회의 여러 풍토와 여건을 이야기하며 약자에 대한 옹호를 들어 그 법률이 필요함을 이야기하였다. 자유주의적인 내 성향을 우려하여 일부러 꺼낸 얘기였던 지도 모르겠다. 사회 속의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 나아가 사회적 참여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타고난 성향이야 어디 갔을까마는 실제 그 이후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그 일의 사회적 맥락이나 힘의 관계 등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는 버릇이 들었었다.
헌법재판소가 1953년 제정되어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형법 제241조(간통)에 대하여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의 헌법재판에서 합헌으로 판단했다가 오늘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난 일이다. 물론 지금이라면, 아니 훨씬 이전에 그 형도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고 지금의 헌재와 같은 판단을 내렸으리라. 1905년 공포된 대한제국 형법대전이나 1912년 제정된 조선형사령에서는 유부녀의 간통만을 문제 삼았다 하니, 법률의 역사와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모처럼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실 앞 화단의 매화가 곧 망울을 터뜨릴 모양이다. 계절은 다 같이 누리는 것이겠지만 모르긴 모르되 차리는 놈은 따로 있을 테다. 몰래 가만히 준비하는 놈도, 스미는 것도 다 따로 있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