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고 검은 새가 도시를 선회한다. 길 끝으로 길을 불러 지난날을 노래한다. 지난 세기를 보낸 사람은 다음 세기를 맞지 못한다. 폭력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 취한 사내가 세계를 잠시 흔든다. 불길한 계집과 주인 잃은 거미집이 그림자처럼 떤다. 달이 뜨고 사랑이 진다. 젖은 사내는 오늘 거미집에 계집 같은 잠을 청할 게다. 나도 길 끝에서 술을 얻고 옛 노래를 들어야지. 돌아오는 길에는 낯선 길이 길게 이어질 테다. 나에게도 불안한 계집처럼 불길한 사랑이 깃들 테다. 아무렴, 검은 새가 곤두박질치고 바람이 바람을 불러 함께 운다.
흐리고 비가 온다. 나는 담배 연기를 내뿜어 흐림을 더한다. 술을 불러 너를 만난다. 잊지 않을 것이다. 술을 부르던 너나 네 이웃이 아니라 나, 그리고 나의 이웃을. 비가 내리고, 너를 피하고, 내가 눕던 날. 그렇게 먼산에 나도 눈이 멀었다.
여름이 가고 있다. 어느 마음처럼, 짧은 매미의 일생처럼 덧없이 가고 있다. 며칠 아이의 생애와 나의 어린 날을 생각했다. 만남과 인연에 대해, 남은 날들에 대해 오래 돌아보았다. 어제는 바짝 마른 하늘에 천둥이 꼭 그렇게 울었다. 제 덩치의 몇 백배 되는 꽃매미 사체를 끌고 가던 개미와 음악당의 뜨거운 백색 시멘트 벽에 껍질로만 남은 달팽이를 떠올렸다. 거기 노랗게 피었던 개나리 무리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름이 가고 있었고, 앞날을 예감한 듯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기도 하였다. 봄이나 겨울 따위 더는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