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말고

from text 2013/08/12 15:58
하찮다. 하찮고 하찮으니 돌도 글도 쥐도 새도 다 하찮다.

그릇이 나머질 결정하지. 아무렴. 근데 그릇은 누가 결정하지? 글쎄, 그거야 나머지가 결정하겠지. 날도 덥고 할 일도 없는데, 술이나 끊어볼까. 그래, 몇 번만 더 먹어보고, 사는 양태를 좀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또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왼손으로 담뱃재를 자연스레 턴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깍지를 끼거나 균형을 맞출 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사용하던 손. 낯설고 두려운 것에 접근할 때 어김없이 떨리던 손.

몰랐다. 돌아보니, 금 밟았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가.

* 며칠째 둘째 놈이 묻는 말이 있다. 맨 처음엔 난데없이 잠 많이 자면 죽어요? 묻더니, 나중엔 밥 많이 먹으면 죽어요? 묻는데, 이야기인즉슨 잠이고 밥이고 오래도록 많이 자거나 먹은 후에는 죽느냐는 거다. 난감한 질문에 성의껏 답을 하다가도, 이어서 왜 그래요? 왜 그렇게 돼 있어요? 묻는 말엔 답이 궁색하다. 엊저녁엔 잘 먹고 놀다말고 갑자기 나는 언제 죽어요? 묻는 바람에 또 애를 먹었다. 어린 철학자가 잠시 떠올랐다.

그때면

from text 2013/07/01 15:59
나이가 다 찬 어느 날엔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지하지 못하고, 싫은 걸 감당하면서, 무얼 맞는 것보단 그게 낫겠다 싶은 거다. 아마도 마지막 행사하는 시위요 위세가 되겠지. 모쪼록 다음 생에는 밑둥치 굵은 나무로 났으면 좋겠다. 보고 싶을 거다. 시원한 그늘이 있거든, 언제 서늘한 가슴이 일거든 나도 한번 슬쩍 떠올려 다오.

또박또박

from text 2013/06/12 17:01
며칠 좀 살 만한 날씨에 그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얼 하며 지내나 문득 스스로 궁금해졌다. 변함없이 한 주에 두어 번 술을 마시고 서너 번은 기절을 하며 둘째 놈 손을 잡고 또박또박 밥벌이 길을 다니고 있다. 더위가 있어 짜증이라도 낼 때 빼곤 대체로 사는 일에 흥미를 잃다보니 화나거나 놀라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감정이 서질 않는다. 간혹 먼 데 소식을 들으면 뭐 또 그런가보다 한다.

몇 권의 책을 읽었고, 감상이나 소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도무지 무엇을 긁적일 마음이 일지 않았다. 영화관에서나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꼽아보자니 무엇을 보았는지 별 기억이 없다. 애들을 위해 다운받아 본 키리쿠 시리즈와 아기기린 자라파가 개중 기억에 남는다.

사진은 아예 찍지도 않지만, 그래서 둘째를 위해서라도 디지털 하나 장만할까 몇 달째 견주기만 하고 있다. 산다면 후지 X100S나 X20이 될 듯. 그리고 차 노래를 부르는 0124님 덕에 머지않아 중고차 한 대 살지도 모르겠다.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으려나.

근래 야구에 부쩍 관심이 많은 서연이는 타이젬 7단에서 어느 정도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전에 기록 이후 올해 대회 참가 일지.

1월 27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89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0위(3승 2패)
2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0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5위(2승 3패)
3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1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9위(2승 3패)
4월 21일, 영남이공대학 천마체육관, 제5회 대구시장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우승
5월 4일, 서울 한국기원, 제2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유단자부 예선 탈락(1승 2패)
5월 12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3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3위(3승 2패)
6월 2일, 동대구지하철역 전시장, 2013 대구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 바둑대회, 어린이최강부 우승

서율이는 유치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보다 한층 밝고 개구지다. 어록이라 할 만한 신통방통한 말들이 꽤 있는데 아쉽게도 주변에 전하고 함께 웃곤 죄다 잊어버렸다.

나무가 좋다. 하얀 하늘, 하얀 세상. 결국 돌아갈 물빛 같은 큰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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