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또 어찌 나려고, 가을이 속절없이 깊어간다. 더는 술 먹고 고꾸라지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리라, 까르르 웃는 두 아이와 성실한 아내를 시체처럼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먹는다. 꿈이 무엇이고 인연이 무엇인가. 알량한 것 하나만 품고 멀리도 왔다. 덜어낸다며 채우고 채운다며 덜기도 했겠지. 난 체는 오죽했으랴. 중독된 시간만큼 해독에 시간이 필요할까. 그러고 나면 레고 장난감처럼 산산이 부서뜨려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아이처럼 기껏 만들어놓은 걸 별일 아니라는 듯 간단히 해체하고 다른 걸 구상할 수 있을까. 지난날이 이리 어렴풋한데 분명한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밤이 깊으면 별은 더 반짝이고 새벽이 가깝다는데, 엊그제 고꾸라지기 전에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별이 제 운명을 노래하고 있었다.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나는 터져 나오는 노래를 억누르고 쥐며느리처럼 둥글게 몸을 말았다.
헐하고 허름한, 공중부양으로 하루를 견딘 우리가 지친 해를 위로하는 저녁,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농담, 흘러간 가락에 비틀거리는 술잔, 무너지는 마음, 오지 않을 사람, 가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욕망, 중독처럼 피어나는 열꽃, 회한과 미련, 적막,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처럼, 부서지는 운명처럼, 주인을 닮은 술집.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며칠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굴곡 없이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새옹지마 같은 세상, 모쪼록 전화위복이 되기를.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없는 갓끈도 고쳐 매지 않기를. 종일 비가 내린 하루, 방앗간 전선 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