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캐모마일

from text 2015/01/17 14:25
이제 너와 난 손도 잡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절망처럼 눈이 내렸고 인적 없는 거리는 음식물 쓰레기처럼 나뒹굴었다. 목적을 달성한 도둑고양이가 다음 목적을 찾아 내세에 몸을 숨긴다. 무언가 단단히 바라는 것이 있었을까. 너를 대할 때만큼 긴장한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다른 모든 일은 후순위였다. 너와 나를 두고 세상이 뱅그르르 돌던 날, 심장 한구석에 고양이 수염 같은 게 자랐다. 단 한 번도 술잔을 놓고 마주한 적이 없구나. 모락모락 캐모마일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너를 따라 적막으로 사라져도 좋을까. 그만하면 오래 아팠으니, 모른 척 뜨거운 것 모두 두고 따르면 될까. 어느새 우린 손도 잡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딱 그만큼의 거리를 찾았다.

율보뚱보

from clip 2015/01/10 19:51
얼마 전 0124님이 스카이 베가로 찍어 보내 준 버거킹 와퍼 먹는 먹보. 녀석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듯, 전화기에 저장해 두고 몇 번이나 보며 웃었다. 갖은 삽질 끝에 블로그에 처음 올리는 동영상.

 

새벽 세 시

from text 2015/01/06 04:29
새벽 세 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차례를 지켜 아파트 103동이 광장으로 들어서고, 연말부터 수목을 장식하던 알전구들이 마구 스스로를 흔든다. 마음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마음의 결은 거미줄 같아 얼마나 섬세하고 위험한가. 무엇이 거미처럼 도사려 끈적이며 성가시게 목숨을 노리는가. 고장난 보일러가 집요하게 돌다 멈추길 반복한다. 빗소리가 단호하다. 104동이 들어서다 멈칫, 하늘을 본다. 멀리 희끄무레하게 때 이른 동이 튼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