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실리

from text 2014/06/10 16:22
오월은 여름이더니 유월이 봄이로구나. 일박이일 일정으로 고대하던 시실리엘 다녀왔다. 0124님이 모는 차로 처음 간 나들이, 애들이 좋아하고 운전에 믿음이 가 자주 다음을 기약하여도 좋겠다 싶었다. 공룡과 탁현이형의 여전한 모습도 반갑고 좋았다. 오는 길에는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과 해인사에 들렀다. 해인사에는 사람이 넘쳐 그 옛날의 정취는 간 곳 없었고, 다만 늙은 나무들만 고요히 늙고 있었다.

대양을 떠돌다 온 준탱이, 이번에는 얼굴 한번 못 봤다. 중심 잃지 않고 잘 이기길 바란다. 녀석에게도 전한 말이지만, 지나고 보면 다 지나가는 일이더라. 뭔들 그렇지 않겠나. 다음은 최근에 읽은 이수태의 어른 되기의 어려움에서 기억할만한 한 토막.

그러나 모든 진실은 그것이 진실로 옹립되는 순간에 가장 위태로운 구도에 빠진다. 하나의 진실은 더 큰 진실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진실을 안고 있는 것만이 장벽도 될 수 있다. 악은 폐쇄된 선이고 선은 개방된 악이기 때문이다.

1월 20일

from text 2014/01/21 14:09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세차게 내렸다. 산골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눈이었다. 꾸웍, 문어의 단말마 비명을 두 번 들은 밤이었다. 알코올이 피를 묽게 만들고 뇌수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운 얼굴 몇이 지나갔고,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라고, 이걸 보라고.

응답하라 1994를 시작으로 셜록과 워킹 데드를 보고 덱스터에 빠져 있다. 잦은 좀비 놀이의 여파겠지, 건강검진에서 골감소증 진단을 받았다. 여전히 술, 담배에 햇볕을 잘 쬐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지만 처방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이제 백 일쯤 되었구나, 0124님이 모는 낡은 자동차 덕을 조금씩 보고 있다. 다음은 여름 방학에 이어 두 번째 합숙에 들어간(보고 싶구나) 서연이의 기록 못한 대회 참가 일지.

6월 29일, 포항 실내체육관, 제5회 영일만사랑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4강
7월 14일, 계명대학교 바우어관,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대구지역 예선 유단자부 1위
8월 7일, 서울 63빌딩 별관 그랜드볼룸,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유단자부 예선 탈락(1승 2패)
8월 17일, 울진군 체육관, 제1회 울진금강송배 전국 아마바둑 대축제 전국어린이유단자부 예선탈락(1승 2패)
9월 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2013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학생바둑대회 초등고학년부 예선탈락(2승 1패)
9월 29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7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4조 1위(5승 0패)
10월 5일, 용산 명문바둑학원,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대구대표 선발전 어린이부 2강
10월 12~13일, 문경 실내체육관, 제8회 문경새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 전국초등유단자부 32강
10월 23일, 인천 신흥초등학교 체육관,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어린이부 64강
10월 26~27일, 전주 전주고등학교 강당, 제15회 이창호배 전국아마바둑 선수권대회 전국어린이부 11위(5승 2패)
11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9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3조 3위(4승 1패)

수동 길거리에 서서

from text 2013/08/29 15:54
내 아이는 언제 커서 어른이 될까? 가을이 왔다고, 혼자 축배를 드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타인의 입으로 듣는 옛사람의 근황이란 어떤 것일까? 지나간 상처, 지나간 노래를 되새기는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자식의 앞날을 재단하는 소갈머리, 내가 몰랐던 걸 지금 이 녀석은 알까? 소주 두어 병을 마시고, 아이를 기다리며 수동 길거리에 서서 흘렸던 생각의 파편들. 아직은 더운 바람을 맞으며, 애닯던 노래를 들으며. 수동행 택시 안에서는 낯모르는 이에게 무언가를 주절거리기도 하였다. 가을을 예감하는 밤, 지나는 거리는 낯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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