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from photo/D50 2010/03/27 23:13
토요일 점심, 예순일곱 번째 아버지 생신 축하연을 집에서 가졌다. 장어덮밥, 연어무쌈말이, 잡채, 약밥, 갈비찜 등속을 장만하느라 0124님은 거지반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마즙과 홍어까지 준비한 줄은 몰랐다. 집에서 담근 석류주를 한잔씩 나누었고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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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6 서른 번째 롤

from photo/M6 2010/03/21 22:05
나나 내 가족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나 가능성에 대한 고려, 적어도 그 정도의 분별력을 갖는 것이 세상일을 꾸미거나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자신의 안위를 바탕으로 쉽게 타인의 삶이나 병리적 현상들을 재단하는 사람들과 세태가 갈수록 두렵다. 망가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새삼 '거대한 기획'이 절실함을 느낀다. 설령 아무것도 멈추거나 바꿀 수 없을지라도 어떤 커다란 기획을 염두에 두고 모색하고 저지르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뭣하면 쭈그리고 앉아 비명이라도 지르고 꼬부라진 혀로 주정이라도 부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게라도 꿈틀, 살아야 하는 것을.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summicron 50mm 3rd, 코닥 컬러플러스200

봄눈

from text 2010/03/10 23:05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삼월 적설량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양으로 오십삼 년 만의 기록이라는데, 9.5센티미터가 넘게 쌓였다고 한다. 출근길, 730번 버스는 종점까지 가지 못하고 큰길에서 차를 돌렸고 우산이나 휴대 전화를 들고 사람들은 엉금엉금 기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에서 만난 설악산의 눈이 생각났다. 금세 세상이 이렇게 온통 하얘질 줄 누가 알았으랴. 더는 배울 줄 모르는 무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것만 같았다. 눈밭을 구르는 아이들과 받드는 나무들이 예뻤다.

봄눈은 봄눈이었던가. 오후의 짧은 볕에도 세상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버렸다. 퇴근길에는 꿈을 꾼 듯 먼 옛일처럼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재작년 11월에 사다놓고 표지도 구성도 마음에 안 들어 던져두었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며칠 동안 읽었다. 김연수가 문득문득 떠올랐으나 그와 달리 불쾌한 구석은 없었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믿을 수 없게 서정적이었다. 특히 여섯 번째 구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랑은 고백이 아니라 행위일 것이다. 소통도 언어가 아니라 몸짓일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독법일런가. 내내 오스카와 서연이가 겹쳤고, 나는 오스카가 되었다가 서연이가 되었다가 하였다. 물론 토머스도 되었고 슈미츠가 되기도 하였다. 거기 눈길에 미끄러져 가련한 내 사랑이 부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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