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from text 2009/07/27 23:18
된통 한 방 먹은 기분이다. 싫은 건 싫고, 잡문을 잡스럽게 쓰거나 행동에서든 언사에서든 무슨 꼬투리라도 잡힐라치면 이후론 거들떠도 안 보곤 했었는데, 사실 이제는 그런 기억조차 잊고 먹고사는 일인데 다들 절로 이해도 되고 그렇게 헤아리는 것이 또 나이를 제대로 먹는 것도 같았는데, 스스로 꼬락서니가 우습기도 하고 가련키도 하다. 헛살기까지야 했겠냐 싶으면서도 무언가를 놓치고는 그 사실마저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니 더 늦기 전에 이렇게라도 떠밀린 것이 천만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 소설가의 각오와 소설집 여름의 흐름을 읽고 든 생각이다. 되풀이 읽는 동안 이대로 살면 될까, 그래도 좋을까, 나중에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산문집을 먼저 읽어서인지(습관처럼 때때로 번갈아 읽어서인지) 데뷔작인 여름의 흐름 한 작품을 빼곤 산문에서의 얼굴이 내내 소설 속에 디밀어져 반갑고 무섭고 때로 참혹했다. 장편을 두어 권 골라 그의 세계에 더 오래 침잠할까 싶다.

소설가의 각오는 한참 전에 보고 놓아두었다 소설집을 읽으며 다시 꺼냈던 것인데 읽는 맛이 사뭇 달랐다. 그때는 억지스러움도 느끼고 닿지 못할 세계를 추구하는 아집도 느꼈던 것이 이번엔 치열한 정신과 굳건한 육신을 만나는 긴장과 즐거움을 한가득 느꼈으니 말이다. 소설에서는 무언가 제대로 벼린 느낌, 오래 잊고 있던 어떤 것(무거우나 매력적인 정서랄까, 시적 집요함이랄까, 잘 모르겠다)을 만난 느낌을 잔뜩 받았다. 따로 떼어 한 대목을 고를 수 없는 유형의 글들이라 소설에서도 몇몇 심장을 찌르는 대목을 옮기다 말고, 소설가의 각오에서 한 대목과 거기에 실린 인터뷰 중에서 한 대목만 옮긴다. 지나간 모든 것들은 지나간 자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지나간 자리만이 지나간 것들을 반추할 뿐이다. 어쩌면.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카드에 기대를 거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럴싸한 카드가 손에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열어본다. 흔해빠진 카드라도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그리고 무슨 까닭에서인지 이 방법이 훨씬 강하다.

미시마 유키오가 마흔다섯 살 나이로 죽었을 때, 나는 아직 젊었죠. 그래서 이런 일도 마흔다섯 살이 되면 진력이 나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막상 마흔다섯 살이 되고 보니, 그 사람은 왜 겨우 마흔다섯에 포기하고 말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문학 자체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문학 주변에 떠도는 아지랑이 같은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런 결말을 맞이한 것이 아닐까 싶군요. 소설가의 재능이란, 소설 이외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니까요.

* 벼르던 올림푸스 E-P1은 예판 때 시간 맞춰 주문 넣었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돌연 취소하고 말았다. 오늘 있은 500대 한정 판매 정발도 그냥 지나쳤다. 예판 주문 취소 후엔 짧은 후회도 있었지만 하도 달려들 드니 흥미도 애정도 반감되어 파나소닉 후속 기종이나 20mm 1.7 나올 때까지라도 미뤄둘 생각이다.

형제 2

from photo/D50 2009/07/17 14:01
어제, 그제 진주로 해서 남해에 다녀왔다. 15년쯤 전 남해 여행의 마지막 날 코스를 고스란히 거꾸로 되짚는 것처럼. 다만 그때는 창선삼천포대교와 어지러운 펜션들이 없었고 관광산업에 목숨을 걸었거나 돈에 미친 사람들이 적었다. 어쨌든 모처럼 일상을 벗어난 홀가분함에다 줄곧 따라다닌 비까지,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눠 탄 일행들과 무관하게 새록새록 살아나는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았다. 촉석루, 남강장어, 창선삼천포대교, 남해스포츠파크호텔, 부성횟집, 남해별곡식당, 남해대교, 그리고 도둑게와 갯강구떼.

없는 동안 세 모자가 찍은 사진들이 예쁘다. 아비는 세 살 터울 남자 형제로 자라며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곱게 정 나누고 연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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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일째

from photo/D50 2009/07/12 20:31
141일째. 한창 뒤집고 가끔 배밀이를 시도하며 곧잘 사람을 응시하곤 한다. 백만 불짜리 미소와 가늠할 길 없는 포커페이스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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