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from text 2010/05/09 23:08
얼마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이름에 비해 큰 감흥은 없었고, 고마코의 허무한 정열, '헛수고'만이 가슴에 아렸다. 요 며칠 칠곡을 오가면서는 동네 놀이터 나무 그늘에서 박철상의 세한도를 읽고 있는데, 집에서는 덕분에 전에 읽다가 둔 문용직의 바둑의 발견을 새로 읽게 되었다. 좀 전에 마지막 장을 넘기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민병산이 번역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에 붙은 신경림의 해설에 나오는 얘기인 모양이다. 하긴 산다는 건 정말이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나의 삶만을 살 수 없다는 데 인생의 곡절과 어려움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산다는 건 더욱 바둑처럼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바둑이란 무엇일까. 한때 신경림 시인이 '설국'을 바탕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별로 재미없다고 하였을 때의 민병산 선생 말씀대로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도 어쩌면 바둑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 거기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고, 아무 쓰잘데없는 것을 가지고 공연스레 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있을 수 없고……. 하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런 거니까."

소식

from text 2010/04/28 06:36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 금태섭의 디케의 눈, 박정석의 바닷가의 모든 날들을 달아서 읽었다. 셋 다 기대한 것과는 다소 달랐으나 주변을 돌아보고 성찰하기에 충분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특히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누군가 잘못 윤색한 것처럼 단조로운 문체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고 풍부한 사례들이 정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가슴 밑바닥을 건들며 태만과 안주를 요동치게 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였다. 책장을 덮은 게 언제라고 그새 나와 내 가족이 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고민도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지만. 경쟁(만)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이 사회가 얼마나 뒤처지고 덜떨어졌는지는 디케의 눈에도 잘 나와 있다. 최근 접하는 그의 글들에 못 미치는 글발이 아쉽지만, 여기에도 인상적인 대목이 더러 있었다. 콘크리트 더미와 팍팍한 삶에 마음이 유순해진 걸까. 바닷가의 모든 날들도 읽을만한 대목들만 좋게 보았다.

지난주 송아지로부터 공룡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근 이십여 년 만인데 반가운 마음에 대뜸 전화 통화부터 하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무언가가 통통 튀어다녔다. 늑대, 달구, 둘리, 마왕, 삐삐, 얼룩말, 오리, 그 시절엔 어찌 그리 동물들과 특이한 생명체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이른 시간 안에 공룡이 넉넉하게 근거지를 틀고 있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시실리를 방문할 수 있기를.

브라보

from photo/D50 2010/04/26 01:27
2010년 4월 25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바우어관에서 열린 제3회 대구광역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바둑대회에서 서연이가 1학년부 우승을 하였다. 녀석이 속한 1조부터 9조까지 36명이 참가한 가운데 예선 리그전을 거쳐 본선 토너먼트까지 힘든 관문을 거친 것이다. 대진 운이 따랐겠지만, 졸인 내 마음을 훌쩍 넘어서는 기쁨이 있었다. 모처럼 찾은 교정은 휑하던 태를 완전히 벗고 짙은 서양수수꽃다리 향내만큼이나 독한 기억도 잊게 하였다. 한학촌과 박물관 옆 가로수길을 잠시 걸었다. 한 주를 지친 해가 저물 무렵, 흥에 겨운 육신은 저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차까지 내달리고 말았지만, 마음은 내내 거기 서성거렸다. 녀석, 장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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