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에 해당되는 글 4건

  1. 조증이 오래가면 2008/08/13
  2. 휴가, 경주 2 2008/08/10
  3. 휴가, 경주 1 2008/08/10
  4. 여름, 0731-0805 2008/08/05

조증이 오래가면

from text 2008/08/13 14:07
어제와 오늘 김곰치의 책 블로그를 들여다보았다. '발바닥, 내 발바닥'에서 마흔에 만나기로 했다던 그녀가 이 책 '빛'의 정연경의 모델인가, 일종의 헌사인가 생각했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다음은 와 닿은 구절들 중 일부. 링크는 작가의 일기 중 인상적이었던 조증. 둥시의 '언어 없는 생활'과 함께 주문하였다.

남녀가 처음 만나 8초면 '저 사람과 연애할 수 있다 없다' 판단을 한대요. 4촌가 8촌가. 지율 스님에게 그 얘기 했더니, 웃기지 말래요. 보는 순간 안대요, '앗, 내 남자, 내 여자' 하고요. 왜냐하면 워낙 억겁의 어떤 전생의 연이 있기 때문에…. 제발 좀 만나자마자 그날 바로 사고치는 연애 하라고.

찬란한 여성을 보면, 스무 살에 봤는데 아직도 이따금 떠오르거든요. 아, 왜 그리 찬란했을까….

근데 분노라는 게, 언론 보도에도 나왔지만, 사람이 분노할 때 인식이 굉장히 정확해진대요. 복잡하게 몇 달 고민하던 것을 분노의 감정이 왔을 때 한칼에 인식을 끝내버리고 결행한다는 거예요.

* 스물네 시간 만에 책이 도착하였다. 다음은 이경의 작품 해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예수' 중에서 책 뒤표지에 실린 부분.

남녀는 함께 문어를 먹고 있으나 이들이 먹는 것은 동일한 문어가 아니다. 남자는 생명이었던 문어를 먹고 여자는 음식인 문어를 먹는다. 음식이라는 여자의 판단 배후에는 다른 생명체를 먹을 자격을 인간에게 부여한 기독교의 교리가 있고 생명으로 보는 '나'의 배후에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인 하느님이 자리한다. 다른 하느님은 이처럼 늦은 밤 남녀가 마주 앉은 술집의 술상 위에까지 좌정해 차이를 압박한다. 때문에 이 장면은 실오라기 하나 벗지 않았으나 간음에 값하는 배신의 현장이 될 수 있다.

* 술병 다스리며 이틀에 걸쳐 완독하였다. 남자와 여자 이야기도 예수 이야기도, 때때로 내가 말을 하는 듯,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술술 읽혔다. 정영태와 톨스토이를 찾아 읽지 않을 수 있을까. '팝콘 사건' 직후 조경태가 만난, 톨스토이 관련 삽화 한 토막.

조국, 러시아, '땅의 사람들'을 끈질기게 사랑하셨던 톨스토이 선생님, 세상의 모든 출판사가 인세 지불 없이 당신 책을 마음대로 출판하여도 된다는 선언을 하셨고, 선생님 마누라 소피아는 그 결정에 충격을 받았고, 그런 소피아를 보고 '아아, 이 여자가 나를 모른다!' 하고 팔십 노구를 이끌고 가출을 감행하셨던 선생님! 그리고 그 가출 여행 중 임종의 자리에 누웠을 때, 인근에서 몰려온 농민들…… 백작님이 갑자기 위독해져 우리 마을 기차역 객사에 누워 계시단 급보를 들었던 거죠. 그런데 선생님은 이러셨다죠. 왜 이리 시끄러워. 러시아 농민은 이렇게 요란하게 죽지 않아.
사람들의 임종 면회를 허용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소피아만큼은 '그 여자 얼굴은 다시는 안 본다!' 하고 거절하셨다니, 하하하, 참 귀여우신 선생님!

휴가, 경주 2

from photo/D50 2008/08/10 03:16
신라밀레니엄파크 덕에, 뙤약볕에 까맣게 탔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늘빛이나 밤공기를 보면 이미 가을인 듯, 여름도 다했다. 거둘 것 없어도, 가는 여름은 늘 그리 아쉽질 않다. 뭔가 서둘러야 하는 건가, 잠깐 마음이 주춤거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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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경주 1

from photo/D50 2008/08/10 03:02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짧은 휴가. 목요일엔 CGV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님은 먼 곳에'를 보고, 금, 토 이틀은 경주엘 다녀왔다. '놈놈놈'은 칸 버전을 보았는데 기대 이상이었고, '님은 먼 곳에'는 조금 기대 이하였다. 바람 한 번 쐬지 않고 지나면 아쉬울 거라고, 물놀이와 신라밀레니엄파크 구경, 하루씩 일정 잡아 또 만만한(?) 경주를 택했다. 수영장은 어릴 때 딱 두 번 가본 것 말고는 첫 출입이었다. 준비된 두 분과 달리 수영복도 수모도 없이 갔다가 대여가 되지 않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별로 맘에 들지도 않는 것까지 사서 '뭔가 해내는' 기분으로 들어갔는데, 나쁘진 않았다. 어쩌면 수영복 아까워서라도 종종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키 108센티미터 이상은 절대 혼탕을 허용할 수 없다는 완강함에 밀려 처음으로 서연이와 목욕탕엘 같이 들어갔는데, 아주 좋았다. 아들 가진 세상 아비들이 흔히 같이 목욕하는 즐거움을 거론하는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라밀레니엄파크는, 물론 상업적 이해에 따라 지어진 것이지만, 옛 문화 재현의 우리식 얕음과 상스러움의 표본을 보는 듯해 마뜩잖았다. 그래도 마상무예와 더운 날씨에도 열성적인 연기자, 친절한 직원들이 인상적이었다.

동대구역, 경주역, 간간이 내리던 비, 택시, 경주교육문화회관, 라면, 김밥, 못난이 수영복, 수모, 야외수영장, 사우나, 거구장, 순두부찌개, 해물된장찌개, 삼겹살 삼인분, 누룽지, 생맥주광장, 노가리구이, 훈제치킨, 엄청난 소낙비, 파라솔, 조식 뷔페, 신라밀레니엄파크, 화랑의 도, 천궤의 비밀, 호낭자의 사랑, 석탈해, SFX 스테이지 쇼, 밀레니엄 매직 쇼, 셔틀버스, 경주역, 대구역, 미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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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0731-0805

from text 2008/08/05 18:08
재미있는 모양이다. 소식도 없이.

이렇게 아쉽고 안타까운 게 많아서야 어디 제대로 하직인들 할 수 있겠느냐.

오랜만에 집을 못 찾아 헤매 다녔다. 여기도 집 앞 네거리 같고 저기도 집 앞 네거리 같더니 집 앞 네거린 낯설기만 하였다. 발음이 꼬여 말도 말 같지 않았다.

일부런 듯 종일 TV를 보는데 문득 42인치 LCD TV가 괴롭히다. 욕 조금, 눈물 조금, 옛 생각 조금 하다 발로 밟아 끄다. 이만한 것에도 이럴진대, 못난 놈, 하다 TV를 끊을 생각을 하다.

이대로 사육, 당해도 좋단 생각, 잠시.

지난겨울 한때처럼, 그 길을 따라 오래 걸었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이 몸의 기억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프거나 다친 자국은 몸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 다 아물어 보이지 않아도, 마음엔 흔적도 없어도, 자칫 깊고 오랜 상처가 반복될까, 저도 모르게 짧고 얕게 지날 길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 담장 너머 보란 듯이 매달린 석류를 보았다. 그리워 그리워 꽃 진 자리에 그리다 그리다 맺힌 암반 덩어리.

인연이 아니면 인연이 아닌 것, 세상도 저도 나도, 길이 다르면, 그렇게 살다 가는 것.

세 번 이상 반복되면 그건 그런 거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헛먹었을지라도 나이가 가르쳐준 것, 먹은 태는 낼 줄 아는 거다. 시시한 세상, 이라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일도 그만큼 줄여줄 거고, 저도 이 여름도 결국 또 언제 그랬느냐 할 거다. 갈 길도 멀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주춤거리고 헤매는 시간이 밉지만은 않다.

* 준탱이 돌아왔다. 온산항에 잠시 정박하고 있다 모레쯤 입성할 모양이다. 일 년여 만이다. 그래도, 시간, 참.

오늘 늦냐길래 잠깐 야근하고 아직 임잔 없지만 간단히 소주 한 잔 할까 한댔더니 집까지 바래다주는 사람이랑 놀란다. 젠장, 그런 사람은 고사하고 허공에 대고 혼자 먹게 생겼다. 어디로 갈꺼나,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