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해당되는 글 5건

  1. 나머지 여름 2017/08/22
  2. 여름 2009/06/26
  3. 여름, 0731-0805 2008/08/05
  4. 잘 가라, 여름 2 2006/09/03
  5. 여름, 휴가 2006/08/11

나머지 여름

from text 2017/08/22 20:22
가을, 여름이 다하지 않은 가을이다. 필시 언제 어디서 나머지 여름이 작열할 것이다. 팔월 중순의 한밤, 술집들이 다 익은 알밤처럼 출입문을 열고 있다. 어디선가 낯익은 별이 떨어지고, 일행과 헤어진 나는 떨어진 별처럼 아무렇게나 손님 없는 빈집으로 들어간다. 며칠 새 확 늙은 기분이다. 거짓말 같은 날씨, 마치 더는 읽을 만한 흥미로운 글이 없어 스스로 쓰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새로 술병의 목을 딴다. 번지를 잃어버린 삼덕동, 봄이면 그곳에도 연분홍 연분이 피어나겠지. 더운 흙은 제 기운을 못 이길 테고, 더는 갈 길 없는 너도 새봄을 핑계로 다하지 않은 꿈을 접었노라 우기기 좋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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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from text 2009/06/26 13:22
바쁜 일과를 마친 아들의 손을 잡고 폭염특보가 내려진 거리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오후 여섯 시의 태양은 정면에서 바짝 얼굴을 겨눈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니 올 여름, 내 너를 상대해 주마. 사랑을 사랑으로 다스려 주마. 사람으로 사람을 잊고 거듭나는 이무기처럼 미끈한 몸뚱이를 날것으로 돌려주마.

나오자마자 사놓고 엊저녁에야 다 읽은 김규항의 예수전. 집요한 신앙고백 앞에 억지스러움을 넘어서는 숙연함을 느끼기도. 묵상에 대해 오래 묵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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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0731-0805

from text 2008/08/05 18:08
재미있는 모양이다. 소식도 없이.

이렇게 아쉽고 안타까운 게 많아서야 어디 제대로 하직인들 할 수 있겠느냐.

오랜만에 집을 못 찾아 헤매 다녔다. 여기도 집 앞 네거리 같고 저기도 집 앞 네거리 같더니 집 앞 네거린 낯설기만 하였다. 발음이 꼬여 말도 말 같지 않았다.

일부런 듯 종일 TV를 보는데 문득 42인치 LCD TV가 괴롭히다. 욕 조금, 눈물 조금, 옛 생각 조금 하다 발로 밟아 끄다. 이만한 것에도 이럴진대, 못난 놈, 하다 TV를 끊을 생각을 하다.

이대로 사육, 당해도 좋단 생각, 잠시.

지난겨울 한때처럼, 그 길을 따라 오래 걸었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이 몸의 기억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프거나 다친 자국은 몸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 다 아물어 보이지 않아도, 마음엔 흔적도 없어도, 자칫 깊고 오랜 상처가 반복될까, 저도 모르게 짧고 얕게 지날 길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 담장 너머 보란 듯이 매달린 석류를 보았다. 그리워 그리워 꽃 진 자리에 그리다 그리다 맺힌 암반 덩어리.

인연이 아니면 인연이 아닌 것, 세상도 저도 나도, 길이 다르면, 그렇게 살다 가는 것.

세 번 이상 반복되면 그건 그런 거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헛먹었을지라도 나이가 가르쳐준 것, 먹은 태는 낼 줄 아는 거다. 시시한 세상, 이라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일도 그만큼 줄여줄 거고, 저도 이 여름도 결국 또 언제 그랬느냐 할 거다. 갈 길도 멀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주춤거리고 헤매는 시간이 밉지만은 않다.

* 준탱이 돌아왔다. 온산항에 잠시 정박하고 있다 모레쯤 입성할 모양이다. 일 년여 만이다. 그래도, 시간, 참.

오늘 늦냐길래 잠깐 야근하고 아직 임잔 없지만 간단히 소주 한 잔 할까 한댔더니 집까지 바래다주는 사람이랑 놀란다. 젠장, 그런 사람은 고사하고 허공에 대고 혼자 먹게 생겼다. 어디로 갈꺼나, 어디에 있을까.

잘 가라, 여름

from photo/D50 2006/09/03 21:20
이제 시원해졌단 생각만 갖고 나섰다가 더워 혼났다. 그래도 싫거나 짜증나기보단 볕이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올해는 마지막으로 느끼는 더위이겠거니 생각하니 이렇게 너그러워진다.

희망교에서 신천을 따라 앞산 심신수련장까지 가려던 것이 덥고 배고파 그만 중동교에서 빠져나와 대동삼계탕에서 약닭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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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from text 2006/08/11 01:11
짧은 술자리가 불러온 상념들.

처한 환경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 봄은 겨울이 끝나서, 여름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 나른함이 싫어서, 여름은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어서, 가을은 아아 너무 짧아서, 떨어지는 그 잎들이 너무 아쉬워서 그럴 수 있겠지, 겨울은 춥고, 어떤 날,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갈 데란 게 그리 많은 게 아닌데, 그럴 수 있을까, 이것도 다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희망찬 생각을 해 보자고, 봄은 이른바 만물이 돋아나고, 추운 겨울이 가고, 여름은 자라날 대로 자라나고, 따사로운 햇살을 우리가 알게 하고, 가을은 여름이 가고, 아아 여름이 가고, 사는 보람을 일으키고, 기다리는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은 움츠리고, 예비하고, 모이고, 사랑하는데, 아아, 이렇게 다 사랑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한 번 돌이키면 다 사랑할 수 있는데, 지금, 이, 여름만은, 이것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구나. 너무 더워 어쩔 수가 없구나. 그 때문에 사랑하던 나머지도 다 어쩔 수가 없구나.

어제부터 시작한 여름휴가. 어제는 하루 종일 빈둥대고(티브이를 통해 살인의 추억과 쇼생크 탈출을 번갈아 보았으며,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와 마찬가지로 웹에서 다 읽은 줄 알면서 구매한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와 심심풀이 땅콩인 줄 알고 산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들추다 말다 하였다), 오늘은 망설이다 외출을 감행하였다. 볼 영화가 없어 헤매다 중앙시네마에서 '한반도'를 예매하고 교보문고엘 잠시 들렀다. '제일서적'이 완전히 없어진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촌놈마냥 예전 로얄호텔 건물을 한참이나 올려다봤더랬다. 문태준의 새 시집과 미시마 유키오를 만났다 라는 소설이 기억에 남는다.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이 둔황의 사랑으로 문지에서 새로(?) 나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읽었던 죽음의 한 연구(내가 읽은 죽음의 한 연구는 옛날 종화형 자취방에서 무작정 뽑아 들고온 것이었다. 그 책이 눈에 띈 것은 기억하건대 세계의 문학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아 실린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보고서였다. 절대 돌려주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오래 갖고 있다 몇 번 독촉받고는 돌려주고 말았다) 개정판을 살까 말까 잠시 망설였으며, 통로까지 차지하고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놀랐다.

한반도 흥행이 괴물에 뒤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우석은 완성도에 대해서만은 관객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우쳤을까. 과도한 캐스팅이 눈에 띄었으며, 교전권을 부여받는 제독과 대통령의 무전에서는 찬 에어컨 바람을 무색케 할만한 전율이 일었음을 고백한다.

지나치기 전에, 소통, 연결, 연대, 이렇게 적고 보니 그 옛날 술친구 생각도 난다마는, 그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도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란 말인가. 아아 십년도 넘은 그 시절 그와 같은 이야길 내뱉은 그녀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