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술자리가 불러온 상념들.
처한 환경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 봄은 겨울이 끝나서, 여름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 나른함이 싫어서, 여름은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어서, 가을은 아아 너무 짧아서, 떨어지는 그 잎들이 너무 아쉬워서 그럴 수 있겠지, 겨울은 춥고, 어떤 날,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갈 데란 게 그리 많은 게 아닌데, 그럴 수 있을까, 이것도 다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희망찬 생각을 해 보자고, 봄은 이른바 만물이 돋아나고, 추운 겨울이 가고, 여름은 자라날 대로 자라나고, 따사로운 햇살을 우리가 알게 하고, 가을은 여름이 가고, 아아 여름이 가고, 사는 보람을 일으키고, 기다리는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은 움츠리고, 예비하고, 모이고, 사랑하는데, 아아, 이렇게 다 사랑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한 번 돌이키면 다 사랑할 수 있는데, 지금, 이, 여름만은, 이것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구나. 너무 더워 어쩔 수가 없구나. 그 때문에 사랑하던 나머지도 다 어쩔 수가 없구나.
어제부터 시작한 여름휴가. 어제는 하루 종일 빈둥대고(티브이를 통해 살인의 추억과 쇼생크 탈출을 번갈아 보았으며,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와 마찬가지로 웹에서 다 읽은 줄 알면서 구매한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와 심심풀이 땅콩인 줄 알고 산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들추다 말다 하였다), 오늘은 망설이다 외출을 감행하였다. 볼 영화가 없어 헤매다 중앙시네마에서 '한반도'를 예매하고 교보문고엘 잠시 들렀다. '제일서적'이 완전히 없어진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촌놈마냥 예전 로얄호텔 건물을 한참이나 올려다봤더랬다. 문태준의 새 시집과 미시마 유키오를 만났다 라는 소설이 기억에 남는다.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이 둔황의 사랑으로 문지에서 새로(?) 나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읽었던 죽음의 한 연구(내가 읽은 죽음의 한 연구는 옛날 종화형 자취방에서 무작정 뽑아 들고온 것이었다. 그 책이 눈에 띈 것은 기억하건대 세계의 문학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아 실린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보고서였다. 절대 돌려주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오래 갖고 있다 몇 번 독촉받고는 돌려주고 말았다) 개정판을 살까 말까 잠시 망설였으며, 통로까지 차지하고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놀랐다.
한반도 흥행이 괴물에 뒤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우석은 완성도에 대해서만은 관객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우쳤을까. 과도한 캐스팅이 눈에 띄었으며, 교전권을 부여받는 제독과 대통령의 무전에서는 찬 에어컨 바람을 무색케 할만한 전율이 일었음을 고백한다.
지나치기 전에, 소통, 연결, 연대, 이렇게 적고 보니 그 옛날 술친구 생각도 난다마는, 그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도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란 말인가. 아아 십년도 넘은 그 시절 그와 같은 이야길 내뱉은 그녀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Trackback Address >> http://cuser.pe.kr/trackback/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