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해당되는 글 7건

  1. 첫눈을 보며 2 2022/12/22
  2. 첫눈 2 2014/12/01
  3. 1월 20일 2014/01/21
  4. 봄눈 2010/03/10
  5. 첫눈 온 날 아침 2008/12/07
  6.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2008/12/05
  7. 첫눈 2007/12/30

첫눈을 보며

from text 2022/12/22 14:10
첫눈이 온 날, 혁명 기념일에 기념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생각한다. 하얗게 변하는 세상을 보며, 성냥불처럼 꺼졌어도 화약으로 타올랐던 이들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첫눈이 오면 만나기로 한 사람도 생각한다. 그 사람은 이미 까맣게 잊었거나 첫눈을 핑계로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세월에 녹아 벌써 없어졌고 어쩌면 나처럼 장소와 사람이 연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그저 첫눈을 보며 가물가물 옛일을 생각한다. 시절이 좋아 어디서든 단 한 번을 기다리지 않고 다만 먼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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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2

from text 2014/12/01 16:03
첫눈이 아주, 잠깐 미친년처럼, 도시를 습격하였다. 12월의 첫날, 바람의 척후를 앞세워, 잠복하던 마음들을 깨우고, 이후는 아랑곳없이. 호응하던 땅이 벌떡 일어나더니 더 깊이 내려앉았다. 그사이 철모르던 목련 꽃망울이 다쳤고, 게걸음을 치던 사람들은 품었던 걸 슬쩍 설수에 녹였다. 소식을 전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없었다.

* 그 밤, 첫눈을 화제에 올렸더니 다들 아니라 하더라. 쌓이지도 않았다면서. 한참 우기다 돌아보니 나도 그랬겠더라. 당신, 만나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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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from text 2014/01/21 14:09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세차게 내렸다. 산골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눈이었다. 꾸웍, 문어의 단말마 비명을 두 번 들은 밤이었다. 알코올이 피를 묽게 만들고 뇌수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운 얼굴 몇이 지나갔고,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라고, 이걸 보라고.

응답하라 1994를 시작으로 셜록과 워킹 데드를 보고 덱스터에 빠져 있다. 잦은 좀비 놀이의 여파겠지, 건강검진에서 골감소증 진단을 받았다. 여전히 술, 담배에 햇볕을 잘 쬐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지만 처방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이제 백 일쯤 되었구나, 0124님이 모는 낡은 자동차 덕을 조금씩 보고 있다. 다음은 여름 방학에 이어 두 번째 합숙에 들어간(보고 싶구나) 서연이의 기록 못한 대회 참가 일지.

6월 29일, 포항 실내체육관, 제5회 영일만사랑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4강
7월 14일, 계명대학교 바우어관,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대구지역 예선 유단자부 1위
8월 7일, 서울 63빌딩 별관 그랜드볼룸,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유단자부 예선 탈락(1승 2패)
8월 17일, 울진군 체육관, 제1회 울진금강송배 전국 아마바둑 대축제 전국어린이유단자부 예선탈락(1승 2패)
9월 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2013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학생바둑대회 초등고학년부 예선탈락(2승 1패)
9월 29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7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4조 1위(5승 0패)
10월 5일, 용산 명문바둑학원,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대구대표 선발전 어린이부 2강
10월 12~13일, 문경 실내체육관, 제8회 문경새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 전국초등유단자부 32강
10월 23일, 인천 신흥초등학교 체육관,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어린이부 64강
10월 26~27일, 전주 전주고등학교 강당, 제15회 이창호배 전국아마바둑 선수권대회 전국어린이부 11위(5승 2패)
11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9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3조 3위(4승 1패)

봄눈

from text 2010/03/10 23:05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삼월 적설량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양으로 오십삼 년 만의 기록이라는데, 9.5센티미터가 넘게 쌓였다고 한다. 출근길, 730번 버스는 종점까지 가지 못하고 큰길에서 차를 돌렸고 우산이나 휴대 전화를 들고 사람들은 엉금엉금 기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에서 만난 설악산의 눈이 생각났다. 금세 세상이 이렇게 온통 하얘질 줄 누가 알았으랴. 더는 배울 줄 모르는 무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것만 같았다. 눈밭을 구르는 아이들과 받드는 나무들이 예뻤다.

봄눈은 봄눈이었던가. 오후의 짧은 볕에도 세상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버렸다. 퇴근길에는 꿈을 꾼 듯 먼 옛일처럼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재작년 11월에 사다놓고 표지도 구성도 마음에 안 들어 던져두었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며칠 동안 읽었다. 김연수가 문득문득 떠올랐으나 그와 달리 불쾌한 구석은 없었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믿을 수 없게 서정적이었다. 특히 여섯 번째 구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랑은 고백이 아니라 행위일 것이다. 소통도 언어가 아니라 몸짓일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독법일런가. 내내 오스카와 서연이가 겹쳤고, 나는 오스카가 되었다가 서연이가 되었다가 하였다. 물론 토머스도 되었고 슈미츠가 되기도 하였다. 거기 눈길에 미끄러져 가련한 내 사랑이 부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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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온 날 아침

from photo/D50 2008/12/07 06:44
첫눈 온 날, 그저께 아침, 전혀 생각 못하고 있다가 쏟아지는 눈발에 일없이 설레고 반가웠다. 서연이는 나무마다 꽃이 핀다고 좋아하였다. 저녁에는 올 첫 송년회 자리, 무어 그리 보낼 게 많고 아쉬울 게 있다고, 내친 김에 사차까지 내달렸더니 이제 좀 정신이 돌아온다. 누적된 알코올 때문이겠지, 요즘 몸뿐만 아니라 부쩍 정신도 마음도 약해졌다. 다음은 0124님의 전언.

급하게 손톱 끝 봉숭아물을 확인하고
아직도 남은 봉숭아물에 흐뭇해하는

과연 너의 첫사랑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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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새가 와서 한참을 울다 간다 허구한 날 우는 새들의 소리가 아니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도 아니다 한참을 아프게 쏟아놓는 울음 멎게 술 한잔 부어줄걸 그랬나, 발이 젖어 멀리 날지도 못하는 새야

지난날을 지껄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담근다 두 달 세 달 앞으로 앞으로만 밀며 살자고 어두운 밤 병 하나 말갛게 씻는다 잘난 열매들을 담고 나를 가득 부어, 허름한 탁자 닦고 함께 마실 사람과 풍경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저 가득 차 무거워진 달을 두어 곱 지나 붉게 붉게 생을 물들일 사람

새야 새야 얼른 와서 이 몸과 저 몸이 섞이며 몸을 마려워하는 병 속의 형편을 좀 들여다보아라

이병률의 시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전문. 이제야 읽은 '바람의 사생활'에서. 아직도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이 아름다운 생은 끝이 날까. 누가 얼른 와서 슬쩍 일러 다오. 가기 전, 술 한잔 부어줄 터이니.

* 아침, 마치 응답하듯 세찬 첫눈이 내린다. 괜스레 들뜨는 이 마음만 갖고도 한 세상 넉넉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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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from text 2007/12/30 07:18
새로 공부하듯 술을 마시던 도중 만난 눈, 그 눈팔매에 기어코 말을 하고 말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싸래기처럼 왔다던 것 말고는, 호쾌한 첫눈이었다. 거리를 곰처럼 뒹굴던 사람들이 예뻤다.

* 커다란 백지에 이름 석자 써본다. 이을 말이라곤 없어도 그냥 그렇게 한 귀퉁이에 그 이름 불러본다. 거기도 여기처럼 하늘이 던지는 돌에 멍드는 가슴이 있는가. 그 팔매에 패인 시퍼런 가슴 있는가. (서른여섯 시간 후, 이천칠년 마지막 날, 다시 내린 눈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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