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해당되는 글 7건

  1. 꽃구경 2015/04/24
  2. 근황 2 2009/12/22
  3. 밀명 2009/03/18
  4. 다만 그땐 2008/06/25
  5. 2008/05/15
  6. 꽃들에게 2008/01/15
  7. 2007/10/25

꽃구경

from text 2015/04/24 18:06
해마다 봄이면 생각날 거야.
어쩌면 오래 미뤄도 좋겠다.

꽃구경에 대한 심사를 이렇게 두 줄 써놓고 두 주 가량이 지났다. 4월 16일 전후로 무얼 더 쓰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드러낼 말은 아니지만, 새삼 누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방이 나비를 본 것 같은 날이 지난다. 거인의 꿈에 나는 그저 꿈틀거리는 한 마리 송충이일 뿐이다.

일찍 찾아온 봄이 유난히 궂은 날씨를 보이더니 서둘러 물러가나 보다. 너를 만나 무얼 했는지는 몰라도 다시 꽃처럼 찾아올 걸 안다. 마주앉아 나눈 꿈같은 얘기 그날로 다 잊어도 마주할 날을 기억하듯이. 그래, 세상 구경이 너를 보는 것만 하랴. 다채로운 봄날, 나를 보고 너를 본다. 버즘나무도 새잎은 저리 예쁜데, 살아있는 게 이리 수상하다.

서연이가 5월 30일부터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4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 바둑 초등부 남자 단체전 대구 대표로 선발되었다(바둑은 올해 처음 정식 종목이 되었고, 단체전으로만 치른다). 4월 5일 시민체육관에서 열린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다니는 학교에 현수막도 걸렸다. 막상 저는 그리 소원하던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도 기쁜 내색이 별로 없던데, 아비는 자식 이름자가 박힌 거라고 지날 때면 매번 처음 보는 듯 쳐다보곤 한다. 날로 녀석을 읽을 일이 아득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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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2

from text 2009/12/22 15:33
저가 봉오리를 피어난 것으로 바꾸기에 밤새 함께 울었더니, 떨어져 내릴 때는 맺혔던 자리마저 가져가누나.

준탱이 들어왔고 날은 추웠다. 마음은 늘어졌으나 몸은 바빴고(일에서는 마음만 바빴고 몸은 늘어졌던 듯) 술자리에서만 한두 대 피우던 담배는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술은 배로 늘었다. 서연이는 바둑 7급 승급 심사를 받았고 서율이 재롱은 늘었으며 비로소 나는 늙었다. 그리움은 쓸쓸한 연기처럼 재빨리 일상이 되었고, 달라진 건 없으나 모든 게 달라졌다.

살아가는 일이란 늘상 사소한 것에서부터 틀어지거나 꾸며지기 마련, 한없이 부풀다 지극히 사소해져버린 작은 몸짓은 알 수 없는 불가항력에 계속 몸을 내맡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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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명

from text 2009/03/18 20:16
사십여 일 술도 담배도 멀리 하였다. 반가운 얼굴들, 어쩔 수 없는 자리, 돌아온 봄을 핑계로 서너 차례 많고 적게 마시고 피웠으나, 열흘 가량은 참말 딱 잊고 지냈다. 욕망이 거세된 듯 거짓말처럼 조금도 생각나지 않고 주변의 유혹도 방해도 없었다. 매주 꼬박꼬박 기약 없이 이어지는 치과 진료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사는 모양이 제법 달라지기도 한 것이다.

어제오늘 집 앞 도로변에 피기 시작한 벚꽃이며 오며가며 남의 집에 핀 소담한 목련을 보고도 무심키만 하더니, 한낮 봄바람에 실려 멀리 그늘진 옹벽에 샛노랗게 핀 개나리 한 무리를 보고는 꽃을 두고도 한잔 술을 떠올리지 못하는 생에 대하여 잠시 생각하였다. 부질없는 고집과 날리는 꽃잎보다 가벼운 사람살이며, 오가는 계절과 가고 오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오래 생각하였다. 무릇 진통 없는 생산이야 없을 터, 비로소 너와 나는 이렇게 근접하는 것인가, 슬픈 밀명에 울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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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땐

from text 2008/06/25 14:49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겠다. 말하자면 역사가 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다 하여 접시 물에 코를 빠뜨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충분히 악의적인 것이다. 해서 말인데, 술과 안주 앞에 맹세를 놓듯이, 두 손 두 발 놓고, 우리가 세상을 외면하잔 거다. 물론 사태의 결말을 책임질 순 없다. 다만 그땐 손짓이 보일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세상이든 누구든, 저도 돌아앉게 마련이니.

* 별처럼 찾아온 거다. 고운 꽃처럼 다가온 거다. 부여안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안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게 명령이다. 그때 명령의 정체다. 손짓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 조금 전, 노태맹의 '푸른 염소를 부르다',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이 왔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를 보고 마음 동해 주문한 책들. 거기 여러 잠언들이 있었지만, 하나만.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다음은 태맹이형의 시집 뒤에 실린 인상적인 '시인의 산문' 중 한 구절.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오래, 가장 강렬하게 사랑한 이 것. 조사 하나를 들고 밤새 문장 한 구석에 꿰어 맞추기하던 날들. 입 안에 얼음이 씹힌다. 고맙다, 덕분에 많이 고통스러웠다. 젠장.

그리고 시 한 편.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5월이 다 지나도록
아파트 화단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져야 할 것이 지지 않으니
끔찍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강박장애다.

난 중력에 병들어 있는 거다.
동네 돼지 수육집 혼자 막걸리를 마시며
이제 아무에게도 나를 이해시키지도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革命이
붉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든
동백꽃처럼 그 자리에서 지지 않든
그건 동백이 가고 그 동백을 만나러 오는
봄바람의 몫이다. 모가지를 꺾고
붉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봄바람의 동백꽃들 몫이다.

막걸리잔에 앞머리 적시며 졸다가
나 문득 한 소식 본다. 사랑이란
그 사랑을 타인으로 놓아주는 것
지지 않는 동백꽃을
그저 붉은 동백꽃으로 바라다보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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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ext 2008/05/15 15:11
산을 찾아, 골도 깊은 산을 찾아
죄 없는 꽃을 꺾던 순간
먹물처럼 발끝에서 달아난 검은 그림자
제 모양을 일구는 사이
발밑이 하얗게 무너진 자리에
흑백으로 세상을 재구성하던 날, 저무는 산을 찾아
죄 많은 꽃을 꺾던 그 순간
격발된 유황처럼 달아오르던 몸뚱이, 숨길 곳 없어
산을 찾아, 숨을 것 많은 산을 찾아
꽃을 꺾던 순간, 내 멱을 따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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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from text 2008/01/15 19:44
어제, 많이는 아니지만 술을 먹고 들어왔는데 아들 녀석이 열두시가 다 되도록 자지 않고 칭얼대고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길 해 주마 하고는 겨우 옆에 눕힐 수 있었다. 토닥토닥 그 단단한 가슴을 두드리며 이야길 시작하는데, 그때서야 취기가 오르는 듯 나도 잠이 드는 듯 서로가 서로에게 잠겨들었다. 머리 한쪽에서는 어떤 슬프고 이해할 수 없는 정조가 저 혼자 떠다니기도 했다. 어째서 꽃 이야길 하게 되었을까.

봄에 피는 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단다. 그래서 화사해 보이지.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르는데 그 간지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 모두. 여름에 피는 꽃은 잎이 무성한 가운데 피니까 더 화려할거야. 장미도 백합도 해바라기도. 우선 꽃이 보여야 하거든. 가을에 피는 꽃? 수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소박한 모양을 하고 있지. 왜 그런지는 몰라. 다들 지는데 피어날려니 그러나? 겨울에 피는 꽃은, 동백이나 매화나, 떨어지면서 더 아프거나 향기만 오래 남는 꽃들이야. 그렇게 흔적을 남기는 거지, 왔다 가는 흔적을.

속씨식물들이 자신의 생식기관을 이렇게 처연하도록 아름답게 피워 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이제야 어제 집에 들어오자마자 목이 말라 부엌에 들어갔다가 겨울이 오고부터 부엌 가장자리에 들여놓은 여러 화분들 중 납작한 난 화분 하나가 꽃대를 대여섯 개나 밀어올린 걸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작은 봉오리에서 하얀 꽃이 활짝 필거라고, 대여섯 밤도 지나지 않아 향기가 가득할거라고 아들 녀석에게 일렀던 것도 생각난다. 밤새 꽃들에게 위안이라도 받은 듯, 아침 대기는 잠시 상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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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ext 2007/10/25 03:31
자다 깨는 일이 잦다. 그럴 때면 이런 저런 꿈도 꾸고 길도 헤맨다. 짧은 글도 짓고 모르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시방 본 나무, 그 나무에 핀 꽃은 낯설었다. 낯가림이 있는 내가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낯선 길에 핀 낯선 꽃. 좌우도 사방도 대칭이 아니었다. 잠깐 손을 내밀어, 흔들다,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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