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from text 2008/05/17 12:49
뭐든 마음껏 즐길 수 없는 나이, 일부러 무언가에 몰두하는 나이
남아있는 젊음과 열정을 되살려 기어코 소진하고 마는 나이, 어제
과음한 다음 날, 살진 짐승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온통 하얗게 바랜 채 내려앉은 겨울 하늘을 만났다.
문득, 세상이 그렇게 작고 예쁘게 보일 수 없었다.
일상에서 잘 지내는 사람들과
여전히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세상은 여전했다. 제 방식으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애써 모른 척 했을 뿐, 정답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석양이 보고 싶다. 운명을 닮은 석양, 며칠 그것만 보다 돌아왔으면 좋겠다.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오래가는, 사랑을 꿈꿔 왔나 보다.
더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었나 보다.
꾸미고 가꾸는 만큼의 거리와 긴장을 유지한 채
편리와 일상을 버린 채
불가능을 두드렸나 보다.
철이 들면 단순해진다는데, 마지막 남은 한 가닥, 놓질 못하겠다.

from text 2008/05/15 15:11
산을 찾아, 골도 깊은 산을 찾아
죄 없는 꽃을 꺾던 순간
먹물처럼 발끝에서 달아난 검은 그림자
제 모양을 일구는 사이
발밑이 하얗게 무너진 자리에
흑백으로 세상을 재구성하던 날, 저무는 산을 찾아
죄 많은 꽃을 꺾던 그 순간
격발된 유황처럼 달아오르던 몸뚱이, 숨길 곳 없어
산을 찾아, 숨을 것 많은 산을 찾아
꽃을 꺾던 순간, 내 멱을 따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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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2

from photo/D50 2008/05/13 22:23
한 번 타자에게 존재하였던 자는, 그 타자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여생 동안 자기의 존재에 의해 감염되어 있다. 그는 자기 존재의 하나의 끊임없는 가능성으로서 자기의 대타존재의 차원을 계속해서 파악할 것이다. 그는 타자에 의해 소유된 자기의 모습을 탈취하여 회수할 수 없다. 타자에 의해 소유된 자기의 모습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해서 그것을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희망까지도 그는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해된 타자가 나에 대해 그 자신이 소유했던 모습의 열쇠를 무덤까지 가지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타자에게 존재했던 모습은 타자의 죽음에 의해 영원히 응고되어 있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 변광배의 '시선과 타자'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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