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고 빼기

from text 2008/04/05 15:22
어제, 뭘 좀 검색하다 만난 구절, 생텍쥐페리가 했다는 꽤 유명한 말인 모양인데, 여태 몰랐을꼬. 뭔가, 콱, 와 닿았다. 삶이든 관계든 그러할 테지.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그저껜 연일 술에 술을 더하다 결막하출혈이라고 왼쪽눈 실핏줄이 터졌다. 어제 찾아간 안과 의사 말이, 피로하면 그럴 수 있는데 가만 놔두면 일주일 정도 가고 처방해 주는 안약을 넣으면 한 오일 간단다. 안약을 받으러 간 아래층 약국 약사는 '음식물과는 관계 없지요' 하는 물음에 잠깐 눈을 반짝이더니 '술 마시면 핏기 안 가셔요' 하며 슬쩍 차림을 훑어봤더랬다. 저녁엔 괜히 야구장을 찾아 오연승을 달리던 삼성 라이온즈의 연승을 끊고, 밤 늦게 두산오거리 간바지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놈 핑계로 김치전골, 계란말이에 소주 넉넉하게 먹었다(지리산부터 시작해, 요 며칠, 이 팀, 가창에서 점심 먹고, 저녁엔 강구항에서 대게 먹고, 갈비살 점심에, 툭하면 사우나, 하루 건너 하루 쉬며, 누구 말마따나 여유로움 작렬이다).

지리산

from text 2008/03/30 01:28
1박2일 지리산에 다녀왔다. 금요일 낮에 중산리에 도착하여 마음씨 넉넉한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물소리 바람소리)에 짐을 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는 법계사까지 올랐다. 흙길이 거의 없이 돌과 계단 투성인데다 연신 오르막이라 꽤 힘들었다. 겨우내 잘 걷지 않고 근래 마음은 마음대로 지친데다 몸은 몸대로 혹사시켰는지 일찍 다리가 아프고 호흡이 가빠 애를 먹었다.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꽤 많이 보이던 진달래는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다.

오르는 길 내내 경상대 사대부고 1학년 남녀 학생들을 마주쳤는데, 대부분 어찌나 인사성 바르고 활기차고 밝은지 우리 일행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아침에 출발하여 천왕봉까지 오르고 내려온다는 이들은 1년에 한 번 소풍을 이렇게 온다니 인솔하는 선생님들도 그렇게 듬직하고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법계사는 삼층석탑 외엔 근래에 지은 것들이라 볼만한 게 없었다.

내려오자마자 목마른 차에 다섯 명이서 동동주 두 되 맛있게 나눠먹은 게 어설프게 취하는 듯 하더니 펜션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소주 열두 병 먹고는 모두들 일찍 취하고 말았다. 모처럼 반주 없이 노래도 한 곡씩들 불렀다. 맑은 날이었는데 어째 별 한 점 볼 수 없었다. 아침에, 남은 삼겹살을 넣어 끓인 김치찌개가 일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예담참숯굴랜드에 들러 숯가마에서 기분 좋게 땀도 내고, 예쁘게 내리는 비도 맞았다. 대구로 다시 돌아가는 게 이리 싫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산을 오르내리며 땀과 함께 털어버린 어떤 것들이 번잡한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악착같이 따라붙고 있었던 것일까, 앞산 어부이씨에서 잡어회와 생아구탕에 곁들이는 반주가 달았다.
모처럼의 휴일이었다. 금요일 밤부터 잔뜩 취해 토요일은 간데없고, 겨우 몸을 추슬러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우방랜드로 나들이 갔다 왔다. 0124님이 어느 사이트에서 신청한 세 식구 연간 회원권을 111,000원에 교환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나선 것이다. 놀이기구를 많이 타지 못해 서연이는 아쉬워하였지만, 조용해서 좋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리는 길, 개나리와 산수유 노란 물결 틈에 혼자 핀 진달래가 예뻤다.

* 휴일 이틀, 0124님이 중앙도서관에서 빌려놓은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를 읽었다. 수많은 앨리스와 에릭들, 뒤바뀐(또는 알 수 없는) 운명들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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