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글. 신경림의 시 '낙타' 전문과 서준식의 옥중서한 중 1985년 10월 26일자 편지 중에서. 무슨 덧붙일 말이 있겠는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 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지 않고 포용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면서 그에게 애정을 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립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적개심과 원한을 가슴에 가득 품고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개심과 원한 없이 사랑하면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모두'가 아니면 '없음'을, 빛나는 영광이 아니면 파멸을 원했던 나의 오만한 마음은, 이리하여 지금 '없음'과 파멸의 심연을 바로 눈앞에 보며 쓰러져 있다.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에 대한 증오까지도 나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고 나의 목소리를 쉬게 했다. 나의 마음을 비틀어 놓았다.
* 이번에도 내가 표를 준 사람은 당선 문턱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아니 아예 의미 있는 수치를 기록하지 못하였다. 면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지역구는 애초 진지하게 기권을 생각하였으나, 나머지 한 표를 조용히 행사하려고 빗길에 아이를 데리고 나선 김에 보탠 것인데, 막상 전체 결과를 대하고 보니, 잘 갈라섰다던 마음이 저도 모르게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하는 데로 향하며 더욱 참담하였다(2.94%라니, 그럴 상태가 아니긴 했지만, 주위에라도 좀 적극적으로 알렸어야 했을 것 아닌가 후회스러웠다. 어쩌면 기대보다 높은 수치였는지 모르지만, 그쪽보다 서울 지역 득표율이 높았다는 걸 애써 위안 삼을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 뜻밖의 성과들도 있었지만, 아깝고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았다. 누굴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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