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2

from text 2007/12/13 15:04
길을 걷다, 남자가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 당신의 주위를 돌고 있는 작은 행성이에요. 여자가 말했다. 당분간, 아무도 이 별을 찾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창백한 해바라기들이 남자를 보고 웃고 있었다. 하얗게 바랜 저 달은 당신을 닮았군, 남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해는 지레 길게 이울었지만, 어디에도 그림자는 없었다. 이 별 어디에도 이제 누군가 남겨놓은 흔적은 없어 보였다. 물론,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계속)

남자와 여자

from text 2007/12/12 21:38
가슴이 콩콩여 가슴에 손을 얹었더니 심장, 그 바닥까지 닿았네
가만히 손 위에 올려놓고 보니 나를 응시하는 두 눈동자
물끄럼한 서슬에 희미한 웃음만 흘렸네, 꾸깃꾸깃 제자리에 넣어두었네

남자는, 그랬다. 바깥 구경 한번에 온 세상을 알아버린 듯, 제집에서 날뛰다 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그럼, 여자는? 희죽, 죽을 쑤어 제 머리를 덮어버린 것이다. 지나가는 개에게나 주라고? 아나, 받아라. (어떤 행성 이야기, 계속)

비애와 더불어 사는 삶

from text 2007/12/03 10:56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비 내린 일요일, 약에 취해 하늘거렸다. 달랠 길 없었다. 오래된 처방은 하룻밤 진통에 그쳤다. 여름 한낮, 낮술 먹고 나온 듯, 나 몰라라 말갛게 씻긴 하늘이 미워 비틀거렸다. 아프지 않기를, 나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