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세계

from text 2006/09/14 05:09
냉장고에 넣어둔 지 며칠 지난 포도에서 달팽이(한자어로 蝸牛 또는 山蝸라 부른다니 멋이 담뿍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가 나왔다. 서연이가 하도 좋아하여 포도 가지를 받쳐 임시로 집을 만들어 주었다. 습성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잘 한 번 키워봐야겠다.

거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눈 깜빡할 새 하루를 보내는 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노고지리의 노래도
고래의 가슴도
가늠할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호흡을 멈추고
합장하며
가만히 응시하노라면 거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가느다란 촉수의 떨림에 이은 아슬아슬한 곡예가 있다
맨 끝에 매달려
웅크리고 침잠하는 무서움이 있다
후학을 위해
길게 한 줄기 남겨주시는 센스가 있다

홈플러스에서

from photo/D50 2006/09/10 18:46
오랜만에 처가에 들렀다가, 홈플러스 대구점에서 장보고 왔다. 서연이 외증조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 많이 좋아지셨다지만, 입맛이 없으신데다 기력도 쇠해 뵈셔서 마음이 아프다. 생로병사에 대한 물음으로 길을 떠난 석가의 삶에서 이래저래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어서 건강하신 모습으로 서연일 얼러주시기를 빈다.

댓글이나 방명록 글을 쓸 때 ‘null오류’란 게 나서 몇 번 검색한 끝에 플러그인을 하나씩 점검하고 결국 랜덤 프로필 플러그인을 제거하였다. 괜찮은 플러그인이었는데 아쉽다. 자체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플러그인과 충돌일 수도 있는데, 가장 의심스러운데다, 일단 순위에서 밀렸다.

토요일, 서연이와 둘이 시민회관에 뽀로로와 별나라 요정을 보러 갔다. 가족 뮤지컬이라는데 돈값은 전혀 못했다. 어떻게 50% 할인해서 표를 구하긴 했지만, 정가가 R석 삼만원, S석 이만오천원이라니 너무 비싸다. 보는 동안 이 녀석은 극에 집중하지는 않고, 왜 해리가 안 나와요? 뽀로로가 어디 가요? 크롱이 안 먹었지요? 해리가 왜 아파요? 왜 불이 꺼져요? 여기는 몇 번 자리예요? 이제 끝나요? 노래하니까 이제 끝났지요? 이제 어디 가요? 질문만 잔뜩 해댔다. 보는 내내 그 궁리만 한 게 틀림없다. 요즘 들어서 녀석이 질문을 만들어낼 궁리를 한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다.

좀 걸어서 교대역에서 지하철 타고 대구역에 내려 롯데백화점 들렀다가 뽀로로 보고 교보 들러 자석놀이 완구 하나 사고 이이팔기념중앙공원에서 바람 좀 쐬고 번햄즈버거에서 햄버거랑 샌드위치 먹고 집에 와서 김치 볶은 거랑 밥 먹었다. 두 주에 한 번 놀토마다 딱 운동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