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계절

from photo/etc 2024/02/25 08:56
토요일 저녁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최백호 콘서트에 다녀왔다. 한 주 내내 비가 내리더니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또 비가 내렸다. 공연의 감흥에 비까지 내리니 날씨 핑계로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사계동행 산행 일정을 뒤로 미루고 이십여 일만에 한잔하였다. 대봉동 징기스와 퍼센트. 창밖 풍경에 가라앉았다 자정 너머 돌아올 때까지 내내 비가 내렸다.

나이가 들고 긴장을 즐기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말과 마지막 계절이 가을이었으면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일 뿐 한 호흡에 부르기 어려우면 세 호흡에 부르면 된다고, 아흔에도 콘서트를 할 거란다. 그때 부를 마지막 계절이라는 노래도 만들어 두었다며 조금 들려주었다. 멋있게 잘 늙었다는 생각을 하며 멋있게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이 산다는 게 무얼까 잠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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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바람에

from text 2024/02/17 16:42
겸손하고 염치를 알며 약간의 위악에 위트와 직관을 겸비하고 있다면 더불어 놀 만하지 않겠는가. 서로를 배려하며 예술을 논하고 세상을 희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살다 보면 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해가 되기도 하고 해가 되던 것들이 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답이 되지 않는 것들이 답이 되기도 하고 답이 되던 것들이 답이 되지 않기도 한다. 뻔한 정답이나 어려운 해답도, 이해나 손해도 다 그렇다.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 나지 않는 것이 절반, 쓰잘데기 없는 것이 나머지 절반이구나. 이제 지난날은 그저 다 지나간 것일까. 지날 날도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이제 그러면 안 되는 것일까.

산에 올라, 너를 생각하며 울었다. 너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며 울고,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며 마저 울었다. 짧은 바람에, 마른 가지가 저 혼자 떨어졌다.

흔들흔들

from text 2024/01/15 22:05
인생이 늘 알 듯 모를 듯하더니 언젠가부터 어제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알 듯하던 것이 무언지도 영 모르겠다. 당최 현실감이 없고 이게 나인지 여기가 내가 사는 세상인지도 확실치 않을 때가 있다. 어쨌거나. 지난번에 눈이 꽤 왔나 보다. 오를 때 멀리 드문드문 보이던 것이 하산길 응달에는 온통 하얗게 굳어 빙판을 이루고 있었다. 뭘 좀 생각하다가는 변을 당하기 십상이겠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와 산 아래를 빙 돌았다. 어디든 바로 가기 싫어 더 멀리 돌았다. 지치면 주저앉을까. 앞발로 뒷발을 끌고 뒤꿈치로 땅을 밀었다. 가 버릇하면 또 간다고, 엎어질 듯이 자빠질 듯이 흔들흔들 걸었다. 그렇지. 늘 알 듯 모를 듯하던 것은 알든 모르든 별 게 아닌 거였다. 대저 내가 흔들거나 흔들린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