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생각이 많았다. 술도 많이 먹고 오래 걷기도 하였다. 하릴없는 잡생각일 뿐이지만 여물지 않은 새가슴이 뻔한 핑계라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미리 겪는 일이란 게 다 좋은 건 아니구나. 멈췄을 때 심장 소리가 더 잘 들리는 이치인가. 오래 걷다 보면 문득 살고 싶어진다. 살고 있음에도 무언가 절박하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유리알 같던 새가슴이 잠시 여물기도 하고 어차피 혼자라는 생각이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정처 없으나 영락없는 일이다. 근육을 더 길러야 하나. 모를 일이다.
그래, 몸에 안 맞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었다. 갈아입는 데에도,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 데에도 조금 시간이 걸릴 테지. 며칠 술에 심신이 약해진 건가. 작은 위로나 잠깐 헤아리는 몇 마디 말에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이 울컥하곤 한다. 갈데없이 늙은 것, 부쩍 무엇을 사거나 어떤 결정을 내리고 바로 후회하는 일도 잦다. 못난 놈이 섣불리 제 경륜을 믿을 것이 아니라 정신줄이나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잔뜩 흐리더니 오후 들어 비가 내린다. 이번 가을비도 밖에만 내리는 게 아니구나. 뿌리를 내릴 것도 아니건만 젖은 속이 바닥으로 자꾸만 가라앉는다. 옛일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어째 노곤하니 하매 봄이 그립다.
십일월 저기는, 가을이 가는 자리로고. 울긋불긋 너는 열명길을, 물들 것 물들이고 가는구나. 산에 난 길은 모두 하산길, 유유자적 너를 따라 걷는다. 지난 인연이사 모를 일, 그예 산빛도 다하였구나. 어기야디야. 가는 가을에 온 산이 무너진다. 다시 오지 말자고, 그 자리에 함께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