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에 해당되는 글 5건

  1. 율이 첫돌 2010/02/27
  2. 사계 4 2010/02/27
  3. 유치원 졸업식 2010/02/19
  4. 백경 2010/02/17
  5. 유치원 발표회 2 2010/02/06

율이 첫돌

from photo/D50 2010/02/27 20:12
율보뚱보의 첫돌. 음력 생일은 아직 좀 남았으나 바쁠 삼월이 부담스러워 이월 마지막 토요일로 날을 정했다. 그랜드호텔 뷔페 더 키친에서 식구들끼리 점심. 돌잡이 때 나는 돈을 집는 모습만 보았는데, 제 어미 말로는 망치를 집으려 잠깐 기우뚱하는 몸을 바로잡았더니 곧바로 돈을 집어 들었단다. 전날 과음한 숙취가 가시질 않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제 형과 달리 백일도 그렇고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못 남겨주어 미안하다(돌아와서야 건질 만한 사진은 고사하고 독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한 걸 알았다).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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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4

from text 2010/02/27 10:10
저 아득한 고어 너머 그를 찾아갔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시가 되지는 않았다. 니은자로 구부러져 너는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고, 나의 지갑엔 교통카드와 복권 세 줄, 그리고 낡은 꿈이 접혀져 있었다. 어쩌면 봄비가 그렇게 들이치는 날이었다. 피곤한 네가 잠시 몸을 뒤척일 때 천지가 놓였다 들렸다. 어째서 이것은 시가 되지 못하는가. 그때, 봄 마중 간 날 저녁으로부터의 긴 꿈. 그래, 너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것을. 채비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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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졸업식

from photo/D50 2010/02/19 18:47
2010년 2월 17일, 서연이의 유치원 졸업식. 흔한 의사, 선생님들 가운데 피아니스트는 돋보였고 나름 흐뭇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기실 녀석의 장래 희망은 프로 바둑 기사이다. 아주 잠깐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때가 있었나 보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업이 무엇이든 그 생업이 무엇이냐 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할 테다.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아비에게는 부끄러움만 넘친다마는, 나누고 도우며 일생을 제대로 누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매듭 하나 짓는 날, 아비 혼자 와 혹여 섭섭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백경

from photo/D50 2010/02/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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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다. 몇 해 전인가 내 지갑은 거의 바닥이 나고 또 뭍에서는 무엇 하나 흥미를 느낄 만한 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얼마 동안 배를 타고 나가 넓고 넓은 바다를 한번 살펴보았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울한 기분을 털어 버리고 피의 순환을 돕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입가에 험상궂은 주름이 늘 때, 11월의 가랑비처럼 마음속에 축축한 비가 내릴 때, 또 문득 장의사 앞에서 길을 멈추고 길에서 만난 장례 행렬을 뒤쫓게 될 때, 특히 우울한 기분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웬만큼 강한 도덕적 자제 없이는 마구 거리로 뛰어나가 타인이 쓰고 있는 모자를 강제로 벗겨 버리고 싶어질 때, 그런 때면 더욱더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권총과 탄알의 대용물이 되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휩쓸어 가는 물결이 어지럽게 엇갈리면서 큰 돛대 위에 마지막 가라앉아 가는 인디언의 머리 위를 덮었고, 남아 있는 것이라곤 다만 곧게 서 있는 둥근 목재 몇 인치와 또 거의 같은 높이로 아슬아슬하게 밀려온 무서운 파도에 박자를 맞추며 얄궂게 나부끼던 기다란 깃발뿐이었다. 그 순간, 붉은 빛 팔과 뒤로 들어 올린 망치가 공중으로 밀려 올라오면서 그 깃발을 서서히 가라앉으려는 그 둥근 목재에 더욱 단단히 못 박아 놓으려 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매가 별 사이의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내려와 큰 돛대 꼭대기로 다가오더니 비웃듯이 깃발을 부리로 쪼아 보기도 하며 태쉬테고를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 새가 어쩌다가 그 커다란 날개를 망치와 목재 사이에 끼워 넣자, 금세 물속의 야만인이 죽음의 숨결을 헐떡이며 그 망치를 거기에 내려치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늘 위의 새는 대천사 같은 소리를 지르며 왕자다운 부리를 하늘로 쳐들고, 그 사로잡힌 몸은 에이허브의 깃발에 싸여 그의 배의 길동무가 되어 가라앉아 갔다. 이때 작은 해조의 무리가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 위를 소리 높이 울어 대며 날고 있었다. 깊고 깊은 물가의 험한 측면에서는 슬픈 듯 흰 파도가 굽이쳐 부딪치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무너졌고, 바다의 커다란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굽이치고 있었다.

허먼 멜빌의 백경(현영민 옮김, 신원문화사) 1장 어렴풋이 보이다의 첫 문단과 135장 추적, 제3일의 결말 마지막 문단. 장엄한 세계, 그 허망한 종말이 수많은 잠언들 속에 끊임없이 명멸한다. 불멸에 대한 필멸하는 욕망들의 처연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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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발표회 2

from photo/D50 2010/02/06 05:58
어린이집에서의 첫 재롱 잔치두 번째 재롱 잔치 그리고 지난해 유치원 발표회에 이은 취학 전 마지막 발표회. 커가는 걸까, 사진 속 녀석의 얼굴은 갈수록 지치고 무표정해 보인다. 녀석에게도 나름의 병리학 하나쯤 들어설 때면 나는 어떤 모양으로 늙어 있을까. 화병에 옮겨 거실 한 귀퉁이에 놓아둔 연분홍 튤립이 밤새 화사하다. 기울었던 종 모양들이 일제히 천장을 향하고 있다. 나무들의 동태를 보니 바깥에서는 바람도 많이 잦아들었다. 76개월, 관계와 죽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은 녀석에게도 세상에게도 깊은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