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해당되는 글 29건

  1. 1박 2일 2010/11/15
  2. 덕영배 2 2010/10/31
  3. 바둑 2 2010/10/25
  4. 모래언덕처럼 2010/08/12
  5. 대한생명배 1 2010/08/03
  6. 브라보 3 2010/07/25
  7. 브라보 2 2010/06/27
  8. 산다는 건 2010/05/09
  9. 브라보 2 2010/04/26
  10. 바둑대회 2 2009/05/25
  11. 바둑대회 2009/05/24
  12. 바둑 2008/11/20
  13. 체제 깊숙이 2008/09/27

1박 2일

from text 2010/11/15 20:04
어제, 그제 문경에 다녀왔다. 제5회 문경새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 대경초등 저학년부 참가를 이유로 서연이랑 둘이 떠난 여행이다. 대경초등부 경기는 일요일 오전에 시작하지만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하루 일찍 출발하였다. 좀 먼 길에는 기차만 고집하다보니 뜻하지 않은 일들도 생긴다. 몰랐는데 가는 기차는 네 량짜리 경북관광순환테마열차였다. 차량 내외는 온통 울긋불긋하였고, 무슨 이벤트 열차인가 한다고 경주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아주머니와 애들이 바글바글하였다. 좀 있자니 각각의 연령에 맞춘답시고 남행열차부터 은하철도 999까지 아마추어 가수의 라이브 공연도 펼쳐졌다. 점촌역사는 아기자기하면서 여기저기 손댄 정성이 예뻐 보였다.

예약한 숙소 근처에서 한우 모듬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아마 최강부, 학생부 등 낮부터 열리는 대회를 둘러보았다. 부산의 천재로 알려진 초등학교 4학년생 신진서 군(올해 대한생명배 우승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대회뿐만 아니라 올해 열린 전국 초등학생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하였다고 한다. 전문학원에 다니지 않고 특별한 개인 지도 없이 독학으로 이룬 성과라고 하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마 최강부에 출전하여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16강까지 올랐다)의 차분하고 또랑또랑한 얼굴과 서늘한 손매가 기억에 남는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고등학생 형을 열심히 응원한 서연이는 이날 현장에서 신청하여 이상훈 9단과 지도 다면기를 가지기도 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서연이는 16강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대진 추첨 운도 따르지 않은 것이 상대는 작년에 준우승을 하고 이번에 같은 부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였다). 올해 내가 함께한 경기로는 지난 4월 첫 우승한 대회의 예선전에서 한 번 진 후 첫 패배인데, 그날 우승하고 달려와 안긴 후 처음으로 달려와 안기기도 하였다. 습한 온기가 잔뜩 전해지면서 나는 그저 잘했어, 잘했어 다독이는 손에 힘만 들어갔다. 16강까지 감투상을 수여하여 상장과 부상으로 상금 3만원을 받았는데, 그동안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에 상금 넣는 걸 꽤나 즐기던 녀석이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는, 이번엔 아빠 하세요, 낮게 얘기하였다. 간밤에는 피곤하다며 그림일기 숙제도 하지 않고 저 먼저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잠이 들더니, 겉으로는 몰라도 저도 속은 안 좋았던 모양이다.

1박 2일 동안 영화를 네 편 보았다. 숙소에서 밤에는 원티드, 아침에는 터미네이터를 보았고, 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역 근처 DVD방에서 내니맥피 2와 전우치를 달아서 보았다. DVD방에서는 유독 큰 소리로 깔깔대더니 나올 때는 양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까지 상상 속으로 자꾸만 날아다니던 녀석이 어째 애처롭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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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영배

from photo/D50 2010/10/31 01:29
제28회 덕영배 전국 아마 대왕전 및 어린이 초청전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연이가 1학년부 우승을 하였다. 애들은 애들이라 금방 맞붙어 겨루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울려 장난도 치고, 몇 번 본 녀석들끼리는 바둑을 두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승부를 일찌감치 결정짓기도 하였다. 곁에서 자식들의 한 수 한 수에 마음을 졸이는 못난 부모, 오늘은 나를 여러 번 돌아보았다. 선물로 찜질방에서 실컷 먹고 놀고 나오는 길, 밤공기가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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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2

from text 2010/10/25 19:19
어제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서 열린 제28회 덕영배 아마대왕전 어린이 부문 예선 겸 2010 어린이 바둑 큰잔치에서 서연이가 1학년부 1위를 차지하며 이번 주 토요일 덕영치과병원에서 열리는 본선에 진출하였다. 8강이 겨루는 이번 본선에서 우승을 한다면 지난 4월 25일 대구광역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바둑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대구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다. 2학년부터는 우승을 하면 통상 상급 단증을 주니 내년에는 아마도 유단자부에서 자주 대회를 치를 터이다.

월간 바둑을 보다 보면 대구의 바둑 교육에 대해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거기 실린 자료로만 보자면 대구의 바둑교실 수는 타 시도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나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 서울은 65개교, 경기도는 112개교, 대전이 57개교, 부산이 46개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 인천, 전라남도, 강원도가 각 2개교씩 운영하고 있어 별나게 유난을 떨 일은 아니겠지만 경상북도와 더불어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어째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바람보다 잘 흔들리는 아비를 굳게 잡아준 두 아들에게는 미움보다 큰 빚을 졌다.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바다.

* 좀 전 셔츠를 다리다 주머니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종이 뭉치를 발견하였다. 부피를 보아도 그렇고 셔츠 주머니에 있은 걸로 봐도 그렇고 간단한 메모나 어디 술집 전표이거나 할 터인데 도통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잠시나마 궁금하지도 않더니 문득 이렇게 늙어가나, 움켜쥘 어떤 것들도 그저 이렇게 가버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라디오에서는 엄마야 누나야, 오빠 생각이 경음악으로 구슬프게 흘러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게도 많은 빚을 졌다. 아, 그리고 당신에게도. 물론 되갚을 생각은 없다. 누군가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누군가는 그저 받아먹기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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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처럼

from text 2010/08/12 18:13
지난주 월요일, 몽골에서 돌아온 날 저녁, 사무실 회식을 시작으로 수요일과 금요일 늦게까지 많은 술을 마셨고, 어제, 그제, 그끄제 내리 사흘 또 피할 수 없는 술자리를 가졌다. 고비 사막에서의 첫날, 몽골인 가이드 어기의 재담과 몽골 사람들의 유목민풍 노래에 취하고 급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와 몽골 보드카에 취한 이후 넓거나 깊어진 것들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돌아온 게 이제야 납득이 되고 실감이 간다. 사람은 얼마나 관대할 수 있고 어디까지 추할 수 있을까. 울림 큰 가락을 타고 언제 뜨거웠냐는 듯 곳곳에서 식은 바람이 모여드는데 나는 홀로 모래언덕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세상엔 하현을 향하는 달만 멀쩡하였고, 눈이 마주치자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은 이광구가 엮은 조훈현과의 대화에서 조훈현.

편한 대로 이해하세요. 그러나 일상적인 의미에서 착하다는 것과 승부에서 마음이 여리다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착한 사람은 승부끼가 없고 나쁜 사람이라야 승부에 강하다는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승부에서는 더 지독해지고 더 처절한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은 아니고 저도 어디선가 읽은 얘기인데, 저도 잘 모르는 얘기를 하자니 좀 쑥스럽습니다만, 승부는 말하자면 결단의 연속인데, 결단이란 요컨대 '선의의 의지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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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생명배

from photo/etc 2010/08/03 17:59
대한생명배 세계 어린이 국수전, 예선 리그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8강이 겨루는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쉽지만 녀석에게 좋은 약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0124님은 녀석의 진로 문제로 더 시달릴 게 뻔하니 차라리 잘 되었단다.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녀석은 가기 전부터 나랑 같이 가면 이길 수 있을 거라 했었는데, 어쨌든 첫 서울 나들이에 좋은 경험을 하고 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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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3

from photo/D50 2010/07/25 20:36
서연이가 제2회 대구시장배 전국 바둑대회에서 파죽의 9연승을 기록하며 1학년부 우승을 차지하였다. 제1회 대회에서의 어린 모습을 말끔히 씻고 넉 달 사이 내리 3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지역 어린이 바둑계에서 꽤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연이어 대회를 지켜보며 나도 어느 정도 긴장을 덜었지만 오늘 녀석은 유난히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대국이 모두 끝나고 바둑학원 원장의 주선으로 한 전직 원장과 다섯 점 접바둑을 둘 때의 낯선 집중력까지 갈수록 녀석의 내면에 자라나는 것을 가늠하기 어렵다. 내일이면 나는 몽골에 있을 것이고 글피에 녀석은 서울에서 첫 전국 대회를 치를 것이다. 모쪼록 저와 내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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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2

from photo/D50 2010/06/27 20:25
제10회 대한생명배 세계 어린이 국수전 대구지역 예선에서 서연이가 불계로만 전승을 거두며 저학년부(1, 2학년) 1위를 차지하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꼼짝없이 다음 달 열리는 서울 본선에도 참가하게 생겼다. 마침 생애 첫 해외 나들이 일정과 겹쳐 처음 참가하는 전국 규모 대회에 같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나마 열심히 응원하여야겠다. 시상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한 바둑학원 원장에게 취미로 할 거라 말했더니 옆에서 옆구리를 쿡 찌르는 품이 녀석의 꿈은 여전한 모양이다. 서두를 건 없겠지. 여물어가는 녀석을 오래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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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from text 2010/05/09 23:08
얼마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이름에 비해 큰 감흥은 없었고, 고마코의 허무한 정열, '헛수고'만이 가슴에 아렸다. 요 며칠 칠곡을 오가면서는 동네 놀이터 나무 그늘에서 박철상의 세한도를 읽고 있는데, 집에서는 덕분에 전에 읽다가 둔 문용직의 바둑의 발견을 새로 읽게 되었다. 좀 전에 마지막 장을 넘기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민병산이 번역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에 붙은 신경림의 해설에 나오는 얘기인 모양이다. 하긴 산다는 건 정말이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나의 삶만을 살 수 없다는 데 인생의 곡절과 어려움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산다는 건 더욱 바둑처럼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바둑이란 무엇일까. 한때 신경림 시인이 '설국'을 바탕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별로 재미없다고 하였을 때의 민병산 선생 말씀대로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도 어쩌면 바둑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 거기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고, 아무 쓰잘데없는 것을 가지고 공연스레 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있을 수 없고……. 하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런 거니까."

브라보

from photo/D50 2010/04/26 01:27
2010년 4월 25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바우어관에서 열린 제3회 대구광역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바둑대회에서 서연이가 1학년부 우승을 하였다. 녀석이 속한 1조부터 9조까지 36명이 참가한 가운데 예선 리그전을 거쳐 본선 토너먼트까지 힘든 관문을 거친 것이다. 대진 운이 따랐겠지만, 졸인 내 마음을 훌쩍 넘어서는 기쁨이 있었다. 모처럼 찾은 교정은 휑하던 태를 완전히 벗고 짙은 서양수수꽃다리 향내만큼이나 독한 기억도 잊게 하였다. 한학촌과 박물관 옆 가로수길을 잠시 걸었다. 한 주를 지친 해가 저물 무렵, 흥에 겨운 육신은 저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차까지 내달리고 말았지만, 마음은 내내 거기 서성거렸다. 녀석, 장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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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대회 2

from photo/D50 2009/05/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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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은 유독 더 분주하다. 아침 미팅으로 일주일에 하루 0124님이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하기 때문이다. 출산휴가 끝나고 두 번째 월요일, 요즘 율이를 봐주시는 어머니께서 일찍 데리러 오셔서 0124님과 나가고 나서였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마친 녀석을 두고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잠깐 놀랐다. 아침에는 한동안 그런 일이 없었는데 혼자 바둑 한 판을 다 두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옷을 입고 어제 생각으로 애잔한 마음에 살짝 뒤에서 보자니 계가에는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 곳곳에 흩어지고 열 집 단위로 잘 구획되지 않는 집들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도와달란 말에 같이 계산을 해보니 백이 반상으로 두 집을 이긴 바둑이었다. 순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되고 말았는데, 어제 본선에서 녀석이 흑으로 딱 두 집을(덤까지 여덟 집 반을) 졌던 때문이다. 내용이야 달랐지만 우연치고는 참, 애잔한 마음에 더해 무언가 울컥하는 게 있어 출근길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이 갔다.

* 오후에 잠시 어제 대회를 검색하다가 낯익은 이름을 보았다. 유치부 우승과 준우승자의 이름이었는데 준우승자는 어제 예선에서, 우승자는 본선에서 서연이와 맞붙은 아이들이었다. 검색 결과를 통해 좀더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은 지난 10일 열린 제15회 구미시장배 대회에서 준우승자는 우승을, 우승자는 공동 3위를 차지한 나름 실력파들이기도 했다.

* 월요일은 0124님 야근하는 날인데다 나도 일이 늦어 온 식구가 늦게 들어왔더니 다음날 아침까지 바둑판이 그대로 있었다. 다시 계가하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어째 신통방통하여 사진 한 장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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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대회

from photo/D50 2009/05/24 21:52
역시 강호엔 고수가 많았다. 영남이공대학 천마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대구시장배 전국 바둑대회 유치부 경기. 조별 리그로 치러진 예선은 겨우 통과하였으나 본선 16강 토너먼트에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팔 개월 배운 실력에 처음 나가본 대회, 대진운까지 크게 기대할 여건은 아니었으나 저도 나도 내심 벼르던 경기였는데 많이 아쉬웠다. 내내 같이 흥분 상태였으나 녀석은 나보다는 한 수 위였다. 시작 전 개회식 때에도 잔뜩 긴장하는 건 나였고, 대국 때에도 녀석은 설렁설렁 두는데 보는 나는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었다. 끝나고 나서도 속이야 어떻든 담담한 녀석과 달리 집에 돌아와서까지 괜스레 분하고 진정이 되지 않는 것은 나였다. 한껏 부풀어 있다 실망하여 힘들어하면 어쩌나 했던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고 녀석은 잠들기 전 잠깐, 오늘이 금요일이었으면 그래서 내일도 쉬고 대회도 하기 전이었으면 하고 속내를 설핏 비추고는 마는 것이었다. 그 작은 가슴에 헤아릴 길 없는 무언가가 자리 잡(히)고 있는 모양이다. 녀석, 자꾸 나대기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더니 좀더 그냥 내버려두어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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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from photo/D50 2008/11/20 04:19
원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녀석이라 아침마다 후닥닥거려도 밥도 다 못 먹고 세수도 제대로 못 하고 유치원에 데려다주기 일쑤였는데, 바둑에 재미를 붙이고부터는 (일찍 일어나면 아침에도 한 판 둔다는 말에)연이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한 판, 저녁에 두세 판씩을 두는데 갈수록 나도 재미가 늘었다. 어느새 시간은 내가 더 많이 잡아먹곤 한다. 이기려고 꼼수를 짜내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것이다. 살짝살짝 요령을 일러주었더니 스물다섯 점을 놓고도 내내 지던 녀석이 며칠 사이 내리 열일곱 점으로 내려앉았다. 나야 뭐 갈데없는 십급 바둑이지만, 한 판 더 두잔 말이 절로 나오는 딱 이 수준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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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깊숙이

from text 2008/09/27 01:20
이제야 가을이 왔나 했더니 겨울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준탱은 가고 술자리 후유증과 아쉬움만 남았다. 예정된 한두 자리만 지나면 확실히 좀 줄여야겠다. 잠시 끊는 것도 좋고.

난생 처음 MP3 플레이어를 샀다. 작고 예쁜 모양에 끌린, 삼성에서 새로 나온 YP-U4.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만 봐도 그것보단 그 공기와 주변을 관찰하고 즐기는 게 낫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길을 걸을 때 음악을 들으며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고 고립하는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면서도 며칠 뭔가 지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다 저지르고 만 것이다. 누구는 그러더라. 같은 풍경이 듣는 또는 들은 음악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음악이 아니라도 어찌 같을 수야 있으랴, 하면서도 자동차처럼 그게 또 그렇구나 했다.

큰 건 하나 지를 예정인 건, 아파트다. 역시 세내는 것이지만 지금보다 많이 비싼데다 넓이도 많이 준다. 봐둔 아파트, 봐둔 평수가 결정을 미루는 동안 나가버려 아직 구한 건 아니지만 들어가면 식구들 모두 처음 살아보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 계약 기간이 일년여 남았으나 0124님 흔들리는 마음에 넘어가버렸다. 계획대로라면 다음달 말이나 다다음달 초엔 옮길 모양이다(그때쯤 입주 예정인 아파트, 부동산 말로는 다음달 초 입주 점검을 하고 나면 물량이 꽤 나올 거란다). MP3도, 이사도, 결정하고 나니 어딘가 허전하고 복잡하던 마음도 조금은 달래지고 나를 둘러싼 새 환경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품게 된다(음악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기대도 되는 것이지만, 얼마나 가까이 할런지도 모르고. 다만, TV를 없애고 잡다한 짐들도 정리하고 잡생각도 좀 떨치고 무엇보다 깔끔하고 정리된 공간에 대한 기대는 하게 된다). 그러나 체제 깊숙이 편입하는 이 씁쓸한 기분이란. 언제든 탁 놓아버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건데, 어딘가 저당 잡히고 목매다는 이 꼼짝없는 마음이란.

내가 너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더는 너에게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꽃은 지고 마는 것, 더는 거꾸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곳에 포개져, 먼 훗날, 깊이 잠들 수 있기를.

* 서연이가 바둑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었다. 유치원 종일반은 관두고 하원에 맞춰 동성초등학교(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이다) 근처의 바둑 학원으로 갔다가 피아노 학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가족들이랑 부대끼고 자연을 호흡하며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안쓰럽다. 좋아하니 시킨다는 핑계로 어른들 욕심만 차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이 녀석이 제 엄마와 함께 프뢰벨영재창의성센터라는 데서 한국웩슬러유아지능검사라는 걸 하고 왔다. 아마도 좌뇌, 우뇌와 관계있을 성 싶은 언어성 소검사(상식, 이해, 산수, 어휘, 공통성)와 동작성 소검사(모양 맞추기, 도형, 토막 짜기, 미로, 빠진 곳 찾기)로 이루어진 건데, 각각의 점수로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을 산출하고 합으로 전체 지능을 산출한다고 한다. 결과를 보니 언어성 지능은 상위 0.4%, 동작성 지능은 21.2%, 전체 지능지수는 2%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언어성이 워낙 높아 비교적 평균치에 가까운 동작성을 합하여도 2% 이내에 든다는 것인데, 편차가 커 검사자의 우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제 엄마가 바둑 학원엘 보낸 것인데, 잘 나가는 쪽 밀어주잔 건지 균형을 잡아보잔 건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바둑 용어를 구사하며 곧잘 덤비는데, 맨 처음 선생님께 들었다는 '이겼다고 좋아하지 말고 졌다고 속상해 하지 마라'는 거라도 잘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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