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김곰치의 책 블로그를 들여다보았다. '발바닥, 내 발바닥'에서 마흔에 만나기로 했다던 그녀가 이 책 '빛'의 정연경의 모델인가, 일종의 헌사인가 생각했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다음은 와 닿은 구절들 중 일부. 링크는 작가의 일기 중 인상적이었던 조증. 둥시의 '언어 없는 생활'과 함께 주문하였다.
남녀가 처음 만나 8초면 '저 사람과 연애할 수 있다 없다' 판단을 한대요. 4촌가 8촌가. 지율 스님에게 그 얘기 했더니, 웃기지 말래요. 보는 순간 안대요, '앗, 내 남자, 내 여자' 하고요. 왜냐하면 워낙 억겁의 어떤 전생의 연이 있기 때문에…. 제발 좀 만나자마자 그날 바로 사고치는 연애 하라고.
찬란한 여성을 보면, 스무 살에 봤는데 아직도 이따금 떠오르거든요. 아, 왜 그리 찬란했을까….
근데 분노라는 게, 언론 보도에도 나왔지만, 사람이 분노할 때 인식이 굉장히 정확해진대요. 복잡하게 몇 달 고민하던 것을 분노의 감정이 왔을 때 한칼에 인식을 끝내버리고 결행한다는 거예요.
* 스물네 시간 만에 책이 도착하였다. 다음은 이경의 작품 해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예수' 중에서 책 뒤표지에 실린 부분.
남녀는 함께 문어를 먹고 있으나 이들이 먹는 것은 동일한 문어가 아니다. 남자는 생명이었던 문어를 먹고 여자는 음식인 문어를 먹는다. 음식이라는 여자의 판단 배후에는 다른 생명체를 먹을 자격을 인간에게 부여한 기독교의 교리가 있고 생명으로 보는 '나'의 배후에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인 하느님이 자리한다. 다른 하느님은 이처럼 늦은 밤 남녀가 마주 앉은 술집의 술상 위에까지 좌정해 차이를 압박한다. 때문에 이 장면은 실오라기 하나 벗지 않았으나 간음에 값하는 배신의 현장이 될 수 있다.
* 술병 다스리며 이틀에 걸쳐 완독하였다. 남자와 여자 이야기도 예수 이야기도, 때때로 내가 말을 하는 듯,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술술 읽혔다. 정영태와 톨스토이를 찾아 읽지 않을 수 있을까. '팝콘 사건' 직후 조경태가 만난, 톨스토이 관련 삽화 한 토막.
조국, 러시아, '땅의 사람들'을 끈질기게 사랑하셨던 톨스토이 선생님, 세상의 모든 출판사가 인세 지불 없이 당신 책을 마음대로 출판하여도 된다는 선언을 하셨고, 선생님 마누라 소피아는 그 결정에 충격을 받았고, 그런 소피아를 보고 '아아, 이 여자가 나를 모른다!' 하고 팔십 노구를 이끌고 가출을 감행하셨던 선생님! 그리고 그 가출 여행 중 임종의 자리에 누웠을 때, 인근에서 몰려온 농민들…… 백작님이 갑자기 위독해져 우리 마을 기차역 객사에 누워 계시단 급보를 들었던 거죠. 그런데 선생님은 이러셨다죠. 왜 이리 시끄러워. 러시아 농민은 이렇게 요란하게 죽지 않아.
사람들의 임종 면회를 허용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소피아만큼은 '그 여자 얼굴은 다시는 안 본다!' 하고 거절하셨다니, 하하하, 참 귀여우신 선생님!